커다랗고, 묵직한 어른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어른 자전거를 타고 싶어 시골 동네 골목길에서 수십 번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 한쪽 페달에 발을 딛고, 두 손은 자전거 양쪽 손잡이를 바짝 잡고, 다른 한쪽 발은 땅 바닥을 지지하면서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기 위해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다. 결국 해냈을 때, 주변은 아랑곳 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의 도움을 받고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십 번의 실패 후 배운 것이라 더 뿌듯했다.
시골집에는 누가 쓰다가 버린 중고 자전거 1대가 항상 있었다. 나는 그 중고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도 돌고, 들녘도 돌고, 면 소재지에도 나가 과자를 사왔다. 어릴 적 동네 있던 구멍가게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사라지고 난 뒤 과자를 먹고 싶어도 동네에서 사 먹을 수 없었다. 어렵게 배운 자전거는 여러 가지로 나에게 꽤 쓸모 있었다. 자전거로 15분을 달리면 면 소재지의 큰 슈퍼마켓에 가서 과자를 살 수 있었다.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걸어서 30분 거리를 자전거로 가면 15분이면 갈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행복한 일이었다.
어릴 적 나는 종종 시골 동네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답답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동네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밖으로 나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걸어서 30분을 나가야 그나마 면 소재지에 다다를 수 있었고, 거기서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을 더 가야 시내로 들어갈 수 있는 동네였다. 좁은 시골에서 내 인생이 혹여 묻혀버리는 것은 아닌지 무서웠다. 그런 나에게 자전거는 유일한 자유와 희망이었다.
자전거를 타면 면 소재지 어디든 갈 수 있었고, 한 시간 이상을 뻘뻘 땀을 흘리는 불편함에도 자전거 하나만 있으면 친구가 사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자전거는 내 의지 데로 내 몸을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나 갈 수 있게 해줬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 나는 자주 금요일이면 시골집에 내려갔다. 시골집에 내려가면 자전거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벌에 쏘여 입술이 마비가 점점 오던 날도 나는 자전거의 의지했다. 자전거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 병원으로 가 바로 치료할 수 있었고, 증상은 금방 호전될 수 있었다.
나에게 자전거란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매개체이다. 그런데 최근 자전거를 타 본 적이 까마득하다. 다시 핸들에 손을 올리고 힘을 주며, 페달을 열심히 돌려보고 싶다. 실패보다 희망이 있는 미지의 세계로 달리고 싶다. 답답한 마음을 시원스럽게 뚫리게 해줄 것 같은 자전거에 몸을 싣고 싶다.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날리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 자전거에 새 희망을 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