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는 일
등산길이 너무 험난하다보면, 산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한 나머지 '어떤' 산인가에 대해선 고민을 멈추게 된다. 오를 산이 정해져 있으니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변호사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된지 꽤 시간이 지난 지금, 내가 그래왔다. 산에 이미 올랐기에, 들인 힘과 시간이 많기에, 막연히 앞서 가는 셰르파(선배)와 동료들의 뒤를 쫓고 있을 뿐이었다.
(셰르파는 네팔의 한 종족 이름이자 성(姓)으로, 일반적으로 등산 안내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다보니 안개에라도 가려져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지고 불안해졌다. 내 실력의 밑천은 실제로 점점 드러나는 중이다.
지난 2주간 법무법인에서 실무수습(인턴)으로 생활했다. 이 기간은 내게 '어떤' 산에 오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채용 면접에서 언제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정확한 시점과 계기가 떠오르지 않아 술술 대답하진 못하고 당황하여 떠듬떠듬 생각을 꺼내놓았다. 하나는 '변호인'이란 영화, 둘은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인물에 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직 나 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래도 이 직업을 왜 원하는지에 대해선 그럭저럭 이야기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선 잘 떠오르지 않았다. 질문이 들어왔다면 큰일날 뻔했다. 그래서 면접이 끝나고 돌아와 지금까지는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턴 기간동안 유튜브에서나 보던 훌륭한 변호사님들을 직접 뵙게 되어 기뻤지만, 결론적으로 난 가상인물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정명석' 변호사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
그가 보여주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상황 판단 능력
때론 "내 생각이 짧았네"라며 자존심을 버리는 용기,
그리고 의뢰인과 동료들에 대한 배려심
그것이 나의 이상향이다.
열람실 자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갇혀 있는 로스쿨 생의 미래로는 과도한 목표려나. 그러나 원래 목표는 커야 성취감이 큰 법이다. 케이블로도 오를 수 없는 산이 있다. 그런 산을 정복하는 방법은 한 발짝씩 직접 디디는 것뿐이다.
이젠 오를 산도 정해졌고, 그 산이 어떤 산인지도 이해하고 있다. 때론 생각없이 앞을 따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바라는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내 삶을 주체적으로 지휘하고 싶다.
선한 목표가 나를 더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더 나은 직업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없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내게 이번 고민의 시간이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반드시 '정명석'과 같은 변호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