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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장벽

대전 근현대사의 흔적 대전형무소 편

사람은 아픔에서 자신을 살피고 행복으로 에너지를 얻고 좌절에서 일어설 기회를 보게 된다. 모든 변화는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전환점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어디를 다닐 때 항상 작은 돌을 조심한다. 큰 돌은 눈에 띄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넘어지지 않지만 작은 돌은 오히려 쉽게 생각해서 다치게 만들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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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일대기는 역사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소회에 불과한가. 죄라는 것의 관점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생각해보게 한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죄와 벌이었다. 모순적인 상황에서 죄를 지은 사람을 죽였지만 죄의식에 시달려 고독과 자기희생으로 살아갔던 가난한 학생 라스콜리니코프의 행적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중학생 때 읽은 그 작품은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근간인 법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교육을 받는 것일까. 교육을 받으면 그만큼 선해질 수 있는 것인가. 가끔은 근대역사가 남겨진 곳에 가면 죄의 역사가 새겨진 공간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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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대전의 근현대사의 흔적이 남겨진 곳으로 대전형무소가 있던 곳이다. 대전형무소가 이곳에 세워진 것은 1919년이다. 조선총독부령 제86호에 그 설치가 고시되어 개소되었는데 1923년 5월 5일에 대전형무소고 개칭되었다. 대전 감옥은 총면적 34,000평, 구내 면적 14,000평의 규모로 계획되었다. 여감방이 신축 계획되었던 1938년까지 청사 1동, 중앙간수소 1동, 감방 8동(잡거감 3, 독방 2, 병감 1, 구치감 1, 여감 1), 정문 1동, 공장 4동, 취사장 등의 건물들이 일제에 의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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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일부 시설들만이 남아 있는데 한국전쟁 발발 제72주년이 되는 2022년 6월 25일, 대전시 첫 등록문화재로 ‘구 대전형무소 우물’을 등록 고시되었다. 구 대전형무소의 우물은 첫 대전시 등록문화재이기도 하다. 당시 수감되었던 상당수의 독립운동가는 당시의 관점으로는 죄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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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형무소였던 공간을 걸어가며 이곳을 둘러싸고 있었던 과거의 장벽에 대해 생각해본다. 장벽이라는 것은 어떤 공간과 공간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아주 짧은 찰나이지만 우리는 분리되어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엄격한 원형 보존을 규정하고 있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근현대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 등록문화재 제도는 보존과 함께 활용을 목적으로 한 유연한 문화재 보호제도로, 최근 법률 개정을 거쳐 시도지사가 등록 권한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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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늦은 시기까지 이곳은 죄와 벌을 위해 유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1953년 한국전쟁으로 대전형무소는 전쟁으로 파괴된 시설을 복구하게 된다. 1960년에는 대전형무소는 교도소로 변경되고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좌익수형자들이나 소년수형자, 누범자, 미결수용자 등을 수용하였다. 이곳에 있었던 대전교도소는 1984년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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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실패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지 않았다. 사람은 끊임없이 실패와 배움을 반복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관점으로 보고 있다. 어떤 관문을 통과한 것은 성공이라고 볼 수는 없다. 보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통과해야 할 인생의 관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사회는 실패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인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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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는 존재했으며 사람과 사람, 이념과 이념을 가로막았던 벽돌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물리적인 장벽은 없어졌더도 심리적인 장벽은 여전히 남아서 지워지지 않을 근대유산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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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는 구 대전형무소의 망루는 수형자를 감시하기 위해 대전형무소 담당 모서리에 세웠던 감시 초소이다. 삼일운동으로 인해 수감자가 많지가 1919년 대전감옥올 개소하고 1923년에는 대전형무소로 개칭하였다. 망루의 높이는 7.85m인데 망루는 붉은 벽돌을 원통형으로 쌓고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을 했다. 그러고 보니 다이빙 플랫폼 중 하나인 7.5m와 비슷한 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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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자로 잰 듯이 나누어 있지 않다.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를 죄라고 한다고 하면 그 실수의 기준을 누가 정할 수 있는지도 모호할 때가 있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모든 것이 자로 잰 듯하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불균형의 무게를 감내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장벽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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