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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을 만나다.

철학과 정치가 결합되어 있는 세상을 이야기한 함안 주세붕묘역

지금의 학문은 정치학과 같은 학과를 제외하고 정치와 학문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성리학은 정치와 학문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배움을 받았다. 과거를 볼 때에도 그런 주제가 수없이 출제가 되었다고 한다. 공자는 정치의 흥망을 이야기할 때 이것 하나는 분명히 말했었다. 군주가 그 지위를 ‘권력’으로 감각할 때 하고 싶은 대로 폭정을 휘두르고, 거기 아무도 토를 달거나 반발하지 않을 때 그 나라는 확실히 망조에 들어선 것이라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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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에 잠들어 있는 주세붕은 최초의 서원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서원을 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유학자로서의 무게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세붕의 본관은 상주(尙州)이고, 자는 경유(景游)이며, 호는 신재(愼齋) · 남고(南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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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은 고려 말에 고조가 경상도 합천에 우거 하였으나, 아버지대에 칠원으로 옮겨와서 그곳에서 태어났다. 1522년(중종 17)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강원도도사, 곤양군수 등을 지냈다. 주세붕 묘역은 1976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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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가 양지바른 곳에 있는데 이곳에는 주세붕을 비롯하여 가족이 함께 잠들어 있는데 일반적인 묘소와는 느낌이 다른 곳이다. 마치 작은 왕릉의 분위기가 풍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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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 묘소의 봉분은 원형이며, 전면 중앙에 묘비가 세워져 있다. 묘비는 화관형으로 만들었는데 대석에는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봉분 우측에도 묘비가 세워져 있다. 상석 앞으로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는데, 글자를 새긴 것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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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은 군주의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책임의 자리로 보아야 된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책임으로 볼 때 백성들의 안정과 복지 걱정에 밤잠을 설칠 때, 그 나라는 틀림없이 흥륭의 트랙으로 올라선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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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자질도 묻지 않고, 단순히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 하나로 군주가 되고 귀족이 되어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는 유교의 공적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주세붕은 그런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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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의 우측 망주석에는 '수무부모(誰無父母)', 좌측에는 '숙비인자(孰非人子)'라고 새겼다. 주세붕은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에 부임하여 학교를 일으키는 데 힘써 1542년 백운동(白雲洞)에 안향(安珦)의 사당을 세웠다. 1543년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인 백운동서원(紹修書院)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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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되새기는 것은 그만큼 삶의 진리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세붕은 백운동 서원을 만든 뒤에 직제학 · 도승지 · 대사성을 거쳐 1551년(명종 6)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해주에 수양서원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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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실천하고 세상을 떠나고 후세의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것은 의미가 시는 일이다. 주세붕은 사후에 칠원의 덕연서원(德淵書院)에 주향 되었고, 백운동서원에도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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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핵심 사상 네 가지, 즉 학문(學), 기원(天), 덕성(仁), 정치(政)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벽을 허물면 너와 나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아침 일찍 함안을 방문해서 주세붕묘역을 방문해 보니 머리가 명쾌해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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