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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리얼리스트 Sep 23. 2019

새까만 벽을 바라보며

첫 매거진 프롤로그.


대한민국은 영화강국이다. 번거롭게 한국 영화 시장의 경제적 규모를 수치로 들고 오지 않아도 괜찮다.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니깐. 영화관은 커플들의 예상 데이트 코스 한구석에 항상 자리한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통해 아바타를 넘어서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마블도, 영화를 개봉할 땐 주연배우를 항상 내한시켜 홍보한다.


절대적인 인구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인구수적 가치를 가뿐히 상회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 스트리밍 어플인 왓챠, 넷플릭스 등의 앱들이 항상 다운로드 차트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은 자신이 본 영화를 SNS에 기록하고, 평가하며 스스로의 영화 취향을 분석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어떤 무드의 영화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는 듯하다.




영화 취향. 본론에 들어가기 위해서 제법 긴 서론을 준비했다. 필자의 영화 취향은 굉장히 대중적이라고 생각한다. 내 무비 히스토리를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인기 있던 영화들은 거의 다 챙겨봤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영잘알'은 아니다. 2학년 계절학기에 영화의 이해란 교양과목을 수강하기도 했고, 친목 영화 모임까지 꼬박꼬박 참여했던 적이 있지만 영상 내 사물의 배열, 촬영 구도와 기법 등은 봐도 봐도 눈에 익지 않는다. 분석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대신 영화를 보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은 제법 된다.


예컨대 남들이 다 마블의 실수라고 비웃던 캡틴 마블을 보면서도, 나는 "페미니즘이 스무스하게 드러났구나, 저 타이밍에 저 대사면 또 괜찮지..." 하며 흐뭇하게 본 적이 있다. 굳이 캡틴 마블을 예로 든 이유는, 이 영화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평가 잣대가 유명 평론가분들이나, 유튜버분들보단 훨씬 낮구나..."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튼 누군가에겐 영화 알못이라고 평가받을지언정, 나는 소소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밝은 영화를 보는 게 재밌다. (그리고 캡틴 마블, 「엔드게임에선 대박 멋있었잖아...)


여담이지만 몇몇 가까운 친구들은  취향을 항상 비웃는 편이다. 항상 밝고, 깨끗한 내용의 대중영화만 챙겨본다고. 누구나 떠올릴  있는 의미와 교훈들을 내포한 단순한 영화만 보는  종종 못마땅한가 보다. 반면 나는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페이소스(pathos) 범벅의 영화를 굉장히 싫어하는 편인데,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뒷맛이 개운치도 않을뿐더러, 영화  어두운 현실에 이입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는  어두운 현실을 보다가 밖으로 나오면,  보다 나은 자신의 세상에 위안을 느낄 때도 있고, 우울한 영화를 봐야 풀리는 감정도 있다고 한다. 나는  모르겠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취향도 바뀐다는데 나도 언젠가 이해하게 될까?


브런치를 오래 쉬면서, 학기 중에도 브런치를 자주 작성하려면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원래는 주식 투자에 필요한 기업 분석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글은 기본 준비도 많이 필요하고, 자주 쓸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경제학과 포트폴리오 만으로 채워질 브런치가 너무 삭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한테 영감을 받아, 앞으로 고되질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만날 '밝은 영화'들에 대한 간단한 글들을 지루한 경제학 브런치 사이사이에 박아 넣기로 결심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나도 이따금씩 추억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에 검은 화면을 넣은 이유, 매거진의 제목이 저런 이유.


매거진 제목에 나오는 '새까만 벽'은 당연하게도 영화 스크린이다. 영화가 다 끝나고 덩그러니 남은. 영화관에서 보든,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컴퓨터로 보든, 영상이 다 끝나면 검은 화면만 남고, 거기엔 그걸 보고 있던 내 모습만 담긴다. 필자는 그 순간에 영화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가장 잘 떠오르는 듯하다. 검은색 화면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면, 결국 눈 앞에 내 모습이 나타난다. 그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갈 것이다.


프롤로그를 쓰다가 우연히 좋아하는 가수 딘(Dean)의 인터뷰를 보면서 깨달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구나!". 딘(Dean)도 까만 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그 화면을 보고 있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뮤직비디오에 저런 검은 화면을 삽입한다고 했다. 자신의 노래가 모든 이들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


좋은 생각이다. 여기에 적힐 글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마찬가지다. 영화 후에 나온 새까만 벽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들을,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될 다른 분들도 어렴풋이나마 느끼면 좋겠다. 앞서 언급했듯 필자는 앞으로도 밝은 영화만 볼 테니 감상문들 역시 그렇게 잔인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 안에 담길 생각은 더욱 단순할 것이다. 부담이 없을 생각들에 대한 공감이 받고 싶기도 한가보다.


앞으로 여기 적힐 감상문은 그저 편하게 적을 장난식 에세이라 속어도 많고, 짤막 짤막한 글이 될 예정이다. 그만큼 스크롤도 짧겠지... 그럼에도 꾸준히 적어 가다 보면 그 생각들이 담긴 나란 존재는 깊고 긴 생각을 가진 사람이 돼있지 않을까. 브런치를 풍성하게 할 목적으로 단순히 시작한 매거진에 오늘도 과대한 기대를 가져본다.



*참고

아티스트 딘, 무대 밖 '권혁'을 찍고 담다. Directed by Dean_ 셀레브 Sellev. In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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