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arlie Sep 21. 2019

제임스 그레이가 던진 질문과 두 개의 답

<애드 아스트라>와 <잃어버린 도시 Z>

“인간이 지각하는 범위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야 한다. 천국은 왜 있겠는가?” 제임스 그레이의 전작 <잃어버린 도시 Z>에서 포셋 중령에게 아내가 던진 질문이자 진언이다.


 <애드 아스트라>와 <잃어버린 도시 Z>는 하나의 이야기로 시대를 달리해 변주했다. 일차 대전 전후의 실제 인물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는 간극이 크게 느껴진다. 각각의 시대를 지워내면 이야기는 하나이다. 탐험을 떠나는 인간의 이야기. 하나는 남미에 위치한다고 추정되는 미지의 고대 문명 도시를 찾기 위한 탐험으로 실제 역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다른 하나는 철저한 상상의 산물로 지구의 인간이 아닌 우주의 지적 생명체를 찾기 위한 탐험이다. 설정은 다르지만 탐험하는 인간을 다루는 것이다.     

 어떻게 변주되었는가? 하나는 탐험의 당사자를 중심으로 Z라는 도시가 있다고 믿는 지각의 범위를 그렸다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지각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이해의 범위를 그렸다고 하겠다. 시점은 지각하여 먼저 도달한 아버지의 흔적을 아들이 쫓아가는 여정을 취한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의 이야기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도시 Z>는 아버지가 그토록 포기하지 못하는 Z라는 인생의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 아들이 동행한다. 아들은 과연 이해하는가? 그렇지 않다. Z라는 도시가 실제 존재 여부는 사실 퍼시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있다고 이미 지각하고 있다. 그가 탐험을 계속하는 이유는 자신의 지각의 타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그가 지각한다고 해서 실제로 있다는 것이 아니다. 아들은 인디언 부족에게 잡힌 상황에서 죽는다고 생각한다. 퍼시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데 그에게 Z는 아내가 말한 천국과 같은 것이다. 전쟁 중 죽음을 느낀 순간에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아마존 정글이었다. 인디언에게 이끌려간 곳에서 죽임을 당한 것인지 Z로의 안내를 받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죽임을 당했더라도 자신이 지각한 믿음 안에 있으니 그곳이 Z가 되는 것이다. 두 가지의 결말 모두 그에겐 Z로 가는 길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결국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지각의 범위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했다.

<애드 아스트라>의 아버지는 아들의 서사로 설명된다. 로이에게 아버지는 이미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생을 마친 사람이기에 이해하기 위한 당위성이 없었다. 자신의 이해가 아닌 사람들의 평가로 이미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믿음과 다른 숨겨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억눌러왔던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의 명분이 생긴다. 퍼시의 아들과 차이가 있다면 아버지와의 동행이 아닌 혼자만의 여정으로 떠나는 탐험이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집착에 의한 동료의 무고한 죽음은 로이 역시 아버지를 향한 집착으로 인해 반복된다. 같은 경험의 여정을 통해 로이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해한다고 해서 아버지의 길을 반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로이는 아버지가 선택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은 삶에 대한 의욕을 얻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

 두 아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그것은 탐험의 목적에 있다. Z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미지의 영역을 발견함이 목적이다. 발견한다는 행위는 지각의 범주이다. 우주의 지적 생명체는 퍼즐의 첫 조각이다. 지구라는 완성된 퍼즐을 뒤로 우주라는 새로운 퍼즐을 맞추는 중요한 조각이다. 퍼즐을 찾았다면 지각과 이해 사이의 선행 구조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문제는 찾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첫 조각을 찾지 못하면서 우주의 영역은 우주의 지적 생명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구의 팽창 혹은 식민 행성 건설의 영역에 머무르게 된다. (영화 속 달과 화성의 모습) 그 경계의 구분에서 인간 혹은 지구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다면, 지구에서 오감의 작동으로 확인되는 지각의 영역은 완성된 것이다. 그 이상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Z가 존재하지 않고 우주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고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각의 범위를 이해의 범위가 넘어서야 하는 순간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이다. 로이의 눈앞에 보인 것은 아버지와 놀던 어린 시절, 아내와 보낸 사랑의 순간이다. 로이가 지구로 귀환한 것은 단순히 돌아올 장소가 아니다. 지각의 영역이 아닌 이해의 영역으로의 진입이다.

어디에 있으며 존재하기는 하는가

 하나의 이야기를 변주한 두 편의 영화가 다른 결말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제임스 그레이의 생각에 변화가 있는 것일까? 애초에 제임스 그레이는 이해의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퍼시의 탐험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주류 문명이 미개척의 영역을 야만이라고 단정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금기했다. 인디언 부족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했다. 지각의 영역은 이해할 대상을 찾기 위한 선행일 뿐이다. 인간의 문명은 이해의 노력보다는 많고 적음에 대한 지각에 머물러 있다. 남미의 고무 생산지를 둘러싼 전쟁은 달에서의 자원 쟁탈을 위한 분쟁과 같다. <잃어버린 도시 Z>의 고무회사를 소유한 곤도리즈 남작은 평화는 자신의 사업이 번창해야 한다는 것이고, 변화가 없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름에 변화는 필연이다. 변화가 있다고 평화가 사라지진 않는다. 이해의 영역이 작동한 지난 시간의 결과이다. 제임스 그레이는 우리에게 이해의 영역을 강조하고 추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폭력의 역사에 대한 자기변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