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응애-.”
오전 4시 27분. 나는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거실로 나선다. 그리고 은은한 무드의 조명을 서둘러 켠다. 뒤이어 Y가 명랑이를 안고 나와 잠이 덜 깨 흐릿한 눈으로 힘겹게 기저귀를 간다. 그 사이 나는 분유를 준비한다. 팔팔 끓였다가 식힌 43도쯤의 물 120밀리리터에 분유 네 스푼. 원하는 양의 물이 제대로 담겼는지 젖병의 눈금을 여러 번 확인한다. 맘카페에서 젖병의 눈금을 왜 그리 강조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둠 속, 아직 꿈속을 헤매는 엄마에게는 예쁜 젖병보다는 눈금이 진하고 굵은 젖병이 더 적합하다. 한 스푼, 두 스푼, 세 스푼, 네 스푼.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분유량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물과 분유가 담긴 젖병을 양손으로 마주 잡고 3분 동안 비벼준다. 위아래로 힘껏 흔들어 섞으면 거품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잘 비벼줘야 한다. 그렇게 잘 섞은 분유를 Y에게 건넨다. Y의 품에서 배고픔에 몸부림치던 명랑이는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젖병을 힘차게 빨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 우리 집에는 알람 시계가 없었다. 요즘 대부분 알람 시계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하니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스마트폰의 알람 기능 또한 사용하지 않았다. 커튼 틈으로 깃드는 아침 햇살에 느긋하게 눈을 떴고, 밤이면 각자의 몸과 마음이 원할 때 잠을 청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오롯이 내가 정할 수 있는 삶. 우리 부부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명랑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예전에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항상 스마트폰에 알람을 서너 개씩 설정해 두었다. 최초의 알람이 울리면 ‘10분 만’하면서 일어나길 미뤘다. 그렇게 설정해 둔 알람 소리를 모두 듣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명랑이라는 알람은 일어나는 시간을 내가 정할 수도, 미룰 수도 없다. 배고픈 아기에게는 자비를 베풀 여유 따윈 없으니까. 어서 맘마를 내놓으세요! 응애, 응애, 응애애애애애애!
사실 아기가 잠을 자면서 내는 소리는 꽤 다양했다. 배가 고플 땐, 쩝쩝. 잠꼬대를 할 땐, 낑낑. 손가락을 빨 땐, 쪽쪽, 방귀를 뀔 땐, 뿡뿡. 명랑이와 처음 함께 자기 시작했을 때, 난 그 모든 소리에 반응을 했다. 이불 스치는 소리만 나도 눈이 번쩍 뜨였다. 혹시 잘못된 자세로 누워있진 않을까, 잠자리가 불편한 건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 반대로 적막이 이어질 때도 나는 일어났다. ‘영아 돌연사 증후군.’ 돌 이전의 건강한 아기가 갑자기 사망하는 것으로, 주로 밤에 잠을 잘 때 발생한다고 했다. 어두운 밤, 그 단어가 머릿속에 스치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럴 땐 또다시 일어나 아기의 코에 손을 대어 내쉬는 숨을 확인하고, 배에 손을 얹어 오르락내리락 호흡을 느껴야만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매일 밤 수도 없이 일어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제부터 밤에는 나랑 명랑이만 잘 거야. 당신은 작은방에서 푹 자. 그래야 낮에 덜 힘들지.”
어느 날 Y가 내게 말했다. 하지만 육아라는 전장에 전우를 두고 홀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매력적인 제안을 애써 거절하는 내게 Y는 다시 한번 강하게 말했다.
“예민한 엄마 밑에서는 아기도 예민해지는 거야. 명랑이를 잠 잘 자는 아이로 키우려면 내 말 들어.”
상대를 배려하며 예쁘게 말하는 남자. 맞아, 난 Y의 그런 모습에 반했었다. 본인도 힘들 텐데 나의 몸과 마음을 모두 배려해 준 Y 덕분에 나는 한동안 작은방에서 손님용 매트를 깔고 홀로 잤다. 며칠이 지나 이어지는 고된 육아로 더 이상 밤에 쉽게 깨지 않는 정신력을 갖추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쩝쩝, 낑낑, 쪽쪽, 뿡뿡 따위는 ASMR 삼아 잠을 자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의 하루 시간표는 명랑이에 의해 정해진다. 일어나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씻는 시간, 청소하고 빨래하는 시간,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시간까지.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학생들은 학교가 정한 시간에, 회사원은 회사가 정한 시간에 자신의 하루를 맞추지 않던가.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정해진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기한에 늦지 않도록 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 회의를 하고……. 다만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의 사랑스러운 알람은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는 것이겠지만. 또르르, 마음속 어딘가 눈물 한 방울이 굴러간다.
“응애- 응애-.”
오전 1시 57분. 벌써? 아직은 아닐 거야. 잠깐의 잠투정일 거야. 평소보다 훨씬 일찍 울음을 터뜨린 명랑이를 애써 외면하며 다시 잠을 청해 본다. 하지만 울음이 그칠 줄 모르고, 결국 ‘으이-쌰’ 기합을 쥐어짜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리 아가,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응애애애애애애애!”
“응응, 엄마가 빨리 맘마 줄게요!”
그렇게 오늘도 명랑이라는 알람에 맞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