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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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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진 Jul 05. 2016

민준이는 두 살 788 | 닮지 않았어요 똑같아요

  민준이를 위해 무언가를 남겨두려고 육아일기를 쓰려고 했지만 지난 2년 동안 딱히 쓴 내용이 없음에 반성한다.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기록은 기억보다 위대하니까. 사실 내가 육아일기를 쓰지 못 한 이유는 육아에 별로 참여를 안 해서다. 쓸 내용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준이가 깨기 전에 출근하고, 잠든 후에 퇴근했으니 주말 외에는 같이 지낼 시간도 없었다. 게을러서 안 썼다기 보다는 쓸 내용도 없던 것. 하지만 둘째 민재가 태어나며 달라졌다. 회사에는 민재 백일 때까지만 일찍 퇴근하겠다는 허락을 받았기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대략 7시 10분 정도. 난 민준이를 씻기고, 저녁도 먹이고, 약도 먹이고, 재우는 일도 한다. 이렇게 두 달 정도 민준이와 붙어 있었더니 민준이를 더 잘 알게 됐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무늬만 아빠였던 것. 그동안 혼자서 민준이를 키운 아내에게 이 지면을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민준이와 함께 다니면 늘 듣는 말이 '아빠랑 똑같네.'다. 닮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똑같다. 마치 스캐너로 나를 스캔한 다음 쪼그만하게 3D프린터로 뿌렸다고나 할까. 이 똑같은 정도는 외모만이 아니다. 정말이지 유전자의 힘은 대단하다. 민준이는 성격도 나랑 똑같다. 민준이를 보면 내가 보이고, 나를 보면 민준이가 보일 정도다. 게다가 민준이를 보면 어릴적 내 모습이 생각난다. '아, 그래. 나 어렸을 적엔 저랬지.'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올 정도다.



  여러 성격 중에 크게 몇 가지만 보면, 말이 별로 없는 날 닮아 두 돌이 지났는데도 아직 할 줄 아는 말이 엄마, 아빠, 아니아니, 물, 비(비타민) 외에는 으예, 우야, 샤야야, 꺄~~~, 으씨, 우씨, 오씨 등의 외계어 뿐이다. 걱정이 된 아내는 구청에서 하는 무료 진단을 받아봤다. 검사결과는 말이 열 달 정도 늦다는 것. 하지만 생후 30개월 까지는 말을 못해도 괜찮다고 했단다. 그 이후로도 말을 못하면 좀... 그런데, 교회에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분이 '말 못 하는 애 없고, 걷지 못 하는 애 없어. 아무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바보도 말은 할 줄 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아내에게 '민준이가 날 닮아서 별로 말을 안 하고 싶을 뿐,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말이 늦는 건 아닐 것 같다.'라고 말해줬다. 아마도 이게 맞는 이유일 것 같다. 평소 말이 별로 없는 나를 똑같이 닮았다면, 민준이는 별로 말하고 싶지가 않을 뿐 말을 못 하는 장애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하~~~ 별게 다 똑같다.



  이렇게 별게 다 똑같은 민준이를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달 동안 부대끼며 많이 알게 된 민준이에 대해 주기적으로 끄적거려보려고 다시 육아일기를 시작했다. 계산해보니 오늘은 민준이가 태어난 지 788일 되는 날이다. 와~~~ 세월 정말 빠르네. 민재가 태어난지는 72일이다. 모유수유를 하는 민재는 아내가 24시간 보는 중.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면 많이 미안하다. 아내에게 평생 잘 해야지.


(괴상한 한국식 나이 세 살 보다는 과학적인 나이 두 살이 맞겠다 싶어서 제목에 '두 살'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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