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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실 Apr 01. 2021

마음이 보이는 글자

배려가 보이는 스웨덴의 디자인

미약하고 소소한 것을 보듬는 모든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나의 남다른 신체 조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서 휠체어를 다리 삼아 지낸다. 그래서 앉은 높이에 있는 내 눈에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금 나는 4년째 스웨덴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 만난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디자인들을 소개하고 싶다.


배려가 보이는 스웨덴의 디자인


추운 날씨가 11월부터 5월까지 이어지는 이곳에서는, 어딜 가든지 현관 입구에 외투를 걸어두는 옷걸이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무용의 물건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동안 휠체어를 타는 내가 스스로 옷을 걸 수 있는 옷걸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늘 실내에서 외투를 입고 있거나 벗어서 옆자리에 잠깐 놓곤 했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스웨덴의 한 병원 로비에서 오렌지색 벽에 걸린 하얀 옷걸이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벽에 고정된 하나의 고리에 기다란 고리를 연결해서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이 옷을 걸 수 있게 했다. 단순하고 간단하게 디자인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 같아 흐뭇하게 웃음이 지어졌다. 공공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무인 대출기와 반납기는 스웨덴 사람들의 평균 신장에 맞춘 높이와 나와 같이 작은 사람들, 또는 어린이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높이로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왼쪽 사진_ 다른 높이의 옷걸이     오른쪽 사진_말뫼 도서관의 무인 대출대  사진 : 김예솔

또 버스를 타면 휠체어를 탄 사람을 위한 좌석이 있다. 휠체어 좌석rullstolsplats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많은 경우에 유모차를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가에 붙어 있던 손바닥만 한 스티커에 눈길이 갔다. 아기 사진 위로 스웨덴어로 쓰인 문구를 보고 대강 광고이겠거니 했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아기와 버스를 탔나요? 기꺼이 이 공간에 유모차를 놓으세요!”라는 안내였다. 감각적인 디자인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서, 누구에게나 아기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권하고 배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유모차를 끌고 버스나 전철을 타는 것이 남에게 민폐가 아닌 일이 되는 것. 서울에서 붐비는 버스 안,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유모차는 매우 드물게 보았던 기억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다.

스웨덴 남부지방 버스 창가에 유모차를 환영하는 스티커가 붙여있다. 사진:김예솔 

화장실은 그 나라의 평등 지표


여행을 다닐 때 나는 화장실을 유심히 본다. 장애인 화장실은 접근이 쉬운 곳에 설치되어 있는지, 아기 기저귀 갈이대가 남성 화장실에도 있는지, 편의 시설 안내 표시는 외국인인 나에게 까지도 인지하기 쉽게 설계되었는지 등등을 보면 그 사회가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을 배려하는지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지도 짐작할 수 있는 나만의 지표랄까. 스웨덴의 장애인 편의 시설 안내 표시를 보면 참 단순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충실하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시혜적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느낌은 없는 게 인상적이다. 스웨덴 말뫼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 들어서면 화장실 스테이션이 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처럼 넓고 여러 사람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공공 화장실을 떠올리게 했다. 그곳의 대형 픽토그램은 가족, 여성, 남성, 그리 고 이동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동등하게 포함 시키고 환영하고 있었다.

말뫼 Emphoria의 화장실 스테이션 사진 김예솔

헬싱보리에 있는 스웨덴 왕실 소피에로Sofiero 여름 궁전을 방문했을 때이다. 100년이 넘은 이 건축물에 가까이 가니 대리석으로 이어진 계단이 있었다. 그 옆으로 작은 푯말에 휠체어 픽토그램과 엘리베이터라고 쓰여 있는 푯말이 우리를 안내했다. 그 안내 표시는 소박하고 간소하게 그리고 필요한 곳에 있었다. 그곳을 따라가니멀리 가지 않아 궁전 밖으로 설치한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나와 동행한 친구는 계단을 이용하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안에서 만나 구석구석 같이 구경 다닐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반면에 서울에 있는 전통 문화재에 장애인 편의 시설을 향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아쉽게도 문화재를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실행이 미뤄지는 경우를 보았다. 그러나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이 불가능한 것일까. 스웨덴에서 방문한 한 옷가게에는 단지 두 개의 계단이 있을 때에도 휠체어 리프트가 있었다. 깨끗한 하얀 실내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리프트였다. 또 기차역의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진회색 접이식 의자는 엘리베이터 안 벽 색과 동일하게 디자인되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짧은 휴식을 주면서도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디자인 요소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예는 주변을 둘러보면 많다.

왼쪽 _Sofiero 궁전 앞 휠체어 마크와 엘레베이터 표시가 있는 안내  가운데_ 스웨덴 브랜드 [Other Stories] 매장 오른쪽_엘레베이터 안의 접이식의자 


디자이너의 둥근 마음


디자이너들은 섬세하고 미시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타이포그래피를 하는 분들의 작업물에는 디자이너의 마음가짐과 경험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 같다. 매력적인 시각물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하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평소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습관을 들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오늘 지하철을 탄다면, 엘리베이터를 안내하는 사인, 휠체어 좌석 안내들을 한번 나와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유심히 보기를 제안해본다. 그러면 본 것은 경험이 되고, 고스란히 작업물로 세상에 나와 다양한 사람에게 만족을 줄 것이다. 가끔은 상상한다. 상대방이 쓰고 있던 안경을 내가 빌려 쓰면, 그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마법의 안경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좀 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덜 싸우고,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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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디자인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이런 타이포그래피〉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새로운 관점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의 다양성특별위원회(위원장: 이기섭)가 월간 『디자인』 @monthlydesign, 두성종이 @doosungpaper와 함께 진행합니다.

월간 디자인 4월호 글이 게제된 모습. 편집디자인_이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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