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길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편 타당한 길을 가라."
아침을 먹으면서 또 한 소리 들었다. 반듯한 기업에 취직하라는 아버지의 말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미국에서 다시 한 번 깨닫고 한국에 돌아온 후 2008년 3월.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휴학을 했다. 해보고 싶은 것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휴학을 했기에 온전히 하고 싶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마음껏 도전할 수 있었다. FIFA에이전트 시험에도 도전하고, 2007년 말부터 준비해왔던 책 쓰기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3년에 대학로 공연을 하면서 도전했다가 실패한 공개코미디에 나가는 일도 그대로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다시 아이디어를 짜기 시작했다. 휴학 후에 그토록 원하던 FIFA에이전트 시험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친구분들의 자식들과 비교하면서 말씀하신다.
“누구 딸은 한 달에 400씩 번다던데.”
“공부시켜놓으면 뭐하냐 돈을 못 버는데.”
“피파에이전트 자격은 대기업 취업하는데 도움 안 된다.”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남들처럼 안정된 길을 가라.”
“원하는 일을 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나에게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있는지,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 물으신다. 돈도 못 벌면서 꿈을 좇는다는 말을 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아버지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들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아서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돈을 못 버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지금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나에게는 통장 잔고나 한 달에 얼마나 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비록 통장 잔고는 바닥이지만 내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을 노력해서 이룰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글로 남겼다.
아버지는 왜 안정적인 길을 가지 않는지 답답해하시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정적인 길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안정적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정년까지 일하는 경우가 급격히 줄고 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회사가 다른 그룹에 인수되기도 한다. 안정적이라고 생각되던 공무원연금도 개혁을 요구 받고 있다.
남의 기준을 따르지 말자. 각자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다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말자.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길을 선택한다면 당장은 갈등이 없겠지만 정작 본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은 안정적인 길을 가면 된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다.
꿈이 있고 목표가 확실하면 주변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내 인생이다. 남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내 뜻대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선은 내가 행복해야 주변 사람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면 돈은 자동적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짧다.
한 학기 동안 휴학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에 마음껏 도전할 수 있었다.
<책쓰기>
수업을 듣지 않아도,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온전히 글쓰기에 시간을 투자했다. 반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처음에는 한 문장을 쓰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쓰면 쓸수록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었다. 책을 낼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 쌓였을 때 출판사 4곳에 투고했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으나 모든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 비록 거절당했지만 그때 휴학을 하고 온전히 책 쓰기에 시간을 투자했기에 글쓰기의 기초실력을 다질 수 있었다.
<스페인어>
언젠가는 배우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었던 스페인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휴학을 했기에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다. 2달 동안 집중적으로 기초에서 고급 문법까지 배웠다. 여태껏 배웠던 외국어와는 문법이 다른 부분이 많아서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많이 늘지는 않았지만 첫 발을 내디딘 것에 의미를 두었다.
<공개코미디>
공개코미디에 나가기 위해서 파트너를 구하고 직접 아이디어를 짰다. 예전에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대본을 제대로 만들 수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당장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책상에 앉아서 치열하게 고민하자 조금씩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한번 대본을 완성한 후에는 아이디어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됐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컨테츠를 만들 때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반 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완전히 몰두해봤다. 계속해서 졸업을 미룰 수는 없었기에 2008년 9월에 마지막 학기를 등록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휴학기간 동안 FIFA에이전트 합격 이외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글을 썼지만 출간에 실패했고, 스페인어 문법을 완성했지만 입이 트이지는 않았다. 공개코미디에 도전했지만 오디션에 합격하지 못했다.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실패한 휴학이었다. 글을 쓰고, 스페인어를 배우고, 공개코미디에 도전한 것이 당장 돈을 벌거나 구체적인 직업을 갖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면 결국 점은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눈에 띄는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고 훗날 어떤 형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