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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삼밭 며느리 Apr 11. 2017

봄: 미세먼지(1)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 앞을 가리는 것



네, 날은 포근하지만 공기가 답답합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버스를 기다리는 고작 몇 분이 한 없이 길게만 느껴지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 답답한 하늘과 함께. 봄이 되니 미세먼지 역시 확연히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미세한' 크기의 먼지다. 이 미세한 입자들이 모여있으면 시야가 답답해진다. 미세먼지 농도는 미세한 입자 답게 마이크로그램을 사용하는데, 1m³당 몇 마이크로그램의 농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좋음, 보통, 나쁨, 매우나쁨 수준으로 구분한다. 미세먼지가 아직 보통 수준에 머물러 있더라도 수치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육안으로 미세먼지 상황이 좋지 않음을 파악할 수 있다. 때문에 시야가 답답해지고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 영향을 준다.


사람이 내다볼 수 있는 시야의 거리, 시정거리 혹은 가시거리가 짧아지는 현상에는 안개, 박무와 연무가 있다. 박무와  연무는 습도의 차이로 구분하는데 습기가 많은 경우는 박무, 습기가 적은 경우는 연무에 해당한다. 고로 안개가 섞이지 않은채 미세먼지나 부유먼지 등의 오염물질로 인해 시정거리가 짧아지는 것은 연무.


먼지 농도가 짙어 연무로 나타나는 날.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 눈 앞을 가린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존재가 미세먼지 뿐은 아닐 터. 어떤 것들은 실재하지 않으면서도 앞을 가로막곤 한다.


이 실재하지 않는 어떤 것들은 대부분 생각 속에만 있다. 혹시, 어쩌면 등의 단어로 시작해 상상 속에서 역시,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등으로 결론이 지어지곤 한다. 꽤나 심각한 일에 대해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고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시시한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나는 어릴 적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여섯살 꼬맹이의 상상 속에는 냉장고 문을 열면 시커먼 연기 형상을 한 귀신이 나오는 세계가 있었다. 집에 혼자 있는 아이를 부모 몰래 냉장고에 가두고 잡아 먹는다는 다소 잔혹한 설정도 있었다. 결국 위장도 튼튼하게 자라나던 새싹시절의 나는 냉장고 속 요구르트가 너무나도 먹고싶어서 큰 결심을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기까지 했다. 심호흡을 하고 하나, 둘, 셋. 당연히, 냉장고는 조용했고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으며 나는 잘 자라서 지금까지 살아있다.


귀여운 에피소드로만 느낄 지도 모르겠지만 단순한 상상만으로 나는 불쌍하게 굶어죽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가끔은 그런 상상을 아직 믿는다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실 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굳이 거창한 삶의 문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으로 인해 앞이 답답해지는 상황은 많다. 차라리 미세먼지는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실체가 있다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안도할만한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3월 마지막 주 어느 날 아침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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