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약 먹는다고 ADHD가 끝나는 건 아니에요
"나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든가, "나는 살면서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 따위의 것은 없다.
쉬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다. 누구는 명상을 하고, 누구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가고, 누구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약을 먹고, 누군가는 상담을 받는다. 사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다 해보았다.
이전의 나의 하드웨어는 ADHD였다. 여러 호르몬, 특히 도파민의 분비와 재흡수 등이 적절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러한 하드웨어에서 일상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매우 강박적이며, 우울증(굳이 따지면 조울증, 그러니까 양극성장애 2형)이 심했으며, 불안장애가 있어 일반적인 상황이나 특수한 상황에서의 불안도가 높았고, 뭐 아무튼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굳이 더 전시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이러한 하드웨어에는 생각보다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정신건강의학과(소위 "정신과") 방문하기이다. ADHD를 진단받고 약을 먹으면, 적어도 약이 작용하는 시간 동안 인지능력은 보통의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어진다. 수면문제도 잡을 수 있다. 약은 극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여러 문제들은 지속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마음의 소프트웨어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프트웨어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관성'이다. 노트북 하드를 i4에서 i9으로 올려도 여전히 윈도우 XP가 돌아간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다른 비유를 들어보자. 어릴 때부터 발목에 족쇄가 묶여있는 코끼리가 있다. 이 코끼리는 여기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힘이 약한 탓에 벗어나지 못한다. 하드웨어가 약한 상태이다. 그런데 이 코끼리는 시간이 지나서 몸이 한참 커졌음에도 여전히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일까? 코끼리는 이미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커졌지만, 소프트웨어라는 마음은 여전히 있을 뿐이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다. 호르몬을 조절하고, 약물을 통해 치료를 하려고 노력하여도,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습관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다시 넘어지게 된다. 아, 오해하지 말자. 필자는 우리가 결코 변할 수 없다거나 넘어지기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다시 넘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ADHD 진단을 받아 콘서타나 메디키넷을 먹으면, 처음에는 자신의 향상된 인지능력에 놀라게 된다. 이로 인해 무엇인가를 단번에 해내려고 한다. 특히 약을 처음 먹은 사람들은 갑자기 방을 청소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적인 각성된 느낌은 오래가지 않는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것에 익숙해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약을 먹은 상태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약을 더 올리고 싶어 진다. 약의 효과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담당 전문의에게 약을 올려달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이미 약을 먹기 시작한 시점부터 당신의 인지능력은 보통의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콘서타 등의 각성제는 처음에는 최소용량으로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증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혹시 모를 부작용이 있는지 관찰하며 일종의 생체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면 보통은 자신에게 적절한 약 용량을 찾게 된다. (물론 콘서타의 교과서적인 용량은 체중 1kg당 메틸페니데이트 1mg 정도이지만... 현실에서 각자에게 맞는 용량은 다를 수 있다. 부작용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당연히 꾸준한 약의 복용을 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전문의의 진단에 순응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 예전의 내가 다시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변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과연 이 약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당신의 소프트웨어에 신경 써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하드웨어는 교체했으니, 소프트웨어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당신의 가치관, 당신의 습관, 당신의 사고방식을 변화시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필자의 경우 강박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또한 강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합리적이지도 욕망할 만한 것도 아닌 것에 집착했다. 가령, 공부를 안 하는 시간도 마음을 편안히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상담센터를 방문했다. 주 1회의 상담을 꾸준히 하며, 자신의 문제를 찾아나갔다. 또한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상담센터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상담은 큰 도움을 준다. 당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비싼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1시간에 1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에 제대로 된 도움을 받고 싶다면, 훈련된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을 권유한다. 특히 스스로 일상에 문제가 크다고 느낄수록 그렇다.
상담 외에도 다른 방법도 있다. 필자 명상 또한 병행하고 있다. 명상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가장 쉬운 명상은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책도 많이 나와있다. 가령 《ADHD를 위한 마음챙김 처방》이라는 책에서도 이에 대한 자세한 방법 등이 나와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불안함이 커질 때, 마음이 조급해질 때, 집중하지 못할 때,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명상을 시도해 보며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통제보다는 조절이 더 적절한 표현인 거 같다.
운동도 도움이 된다. 이는 하드웨어를 바꾸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패턴을 갖추게 해주며 적극적인 태도로 삶을 변화시키는 실천이기도 하다. 반드시 어려운 운동이 아니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필자는 헬스와 달리기 정도의 운동을 한다. 이러한 운동은 호르몬의 조절에도 도움이 된다. ADHD환자들의 인지능력에 유산소 운동이 도움이 된다는 글도 본 기억이 있다.
글쓰기도 좋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치관들을 글로 써놓고 이를 쭉 돌아보는 행위이다. 필자는 명상보다는 글쓰기를 많이 한다. 이를 통해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즉 글쓰기는 일종의 명상이다. 필자의 친구는 명상을 즐겨한다. 다른 친구는 운동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 각각은 ADHD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다. 우리는 하드웨어만이 아닌 소프트웨어에도 신경 쓰려한다. 새로운 컴퓨터를 샀으면, 새 하드를 달았으면 당연히 기존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해야 하지 않겠는가? 몸집이 커진 코끼리라면, 자신을 묶고 있던 족쇄에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이를 끊어내려 시도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에게도 이러한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다만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가 중요하다. 본인은 하드웨어에 대해서는 정신과,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상담과 글쓰기, 명상과 운동 등을 병행하고 있지만 무엇 한 가지만이 정답이라거나 절대적인 방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신도 당신만의 답을 잘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다양한 시도들을 하자. 우리는 그렇게 제자리에서 한 걸음씩이라도, 아니면 적어도 쓰러져 있는 자신을 질질 끌면서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변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시도할 사람들이지 않은가.
* 사랑은 우리가, 진단은 전문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