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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술샘 Aug 14. 2023

8세가 만난 안토니오 가우디

바르셀로나

정원이의 첫 유럽 여행은 2015년 7월에 갔던 스페인이었다.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2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도 7시간의 시차도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미리 걱정하면 아무것도 도전할 수 없으니 그냥 떠났다. 장거리 비행 걱정을 빼면 더 많은 즐거움이 기다린다.

어린이 승객을 위해 챙겨주는 선물 꾸러미, 네다섯 시간마다 알아서 챙겨주는 기내식, 그리고 영화와 게임, 비행기에는 재미거리가 많다. 장거리 비행은 정원이에게 지루함이 아니고, 즐거운 여정이었다.

한국시간에 맞추어져 있는 정원이의 시차는 엄마의 몫이었다. 정확히 한국시간에 맞추어 오는 잠은 이길 수가 없었다. 모스크바에서 경유하는 시간에 잠에 곯아떨어진 정원이를 업고, 뛰어야 했다. 하필 기다리고 있던 게이트가 탑승 30분 전에 바뀌었던 것이다. 이미 안고 다니기에는 체중이 꽤 나갔었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이 생겼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거의 하루 만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타기 위해 이틀 일찍 도착해서 도시를 돌아볼 수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많은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현지에서 운영하는 가우디 버스투어 상품을 선택했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있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을 버스를 타고 돌아보는 일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상품도 있었으나. 날씨나 함께하는 엄마와 아들을 생각해서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엄마는 70세에, 나는 42세에, 정원이는 8세에 처음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들을 직접 보게 되었다.

2028년  완공 예정이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며 엄마는 말한다.

"살아생전에 다시 바르셀로나에 와서 완공된 성당을 볼 수 있을까?"

내일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8세에 처음 안토니오 가우디를 알게 된 정원이가 부러웠다. 유로자전거나라 여행사의 가이드가 쉴 새 없이 설명하는 것을 오디오 이어폰으로 듣는 정원이의 표정이 꽤 진지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외부 조각들을 설명할 때도, 성당 내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바라볼 때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한다고 하면 애들이 그걸 다 기억하겠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다.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모두 기억 못 하기는 어른도 아이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전부가 아니더라도 그 순간의 느낌의 기억은 존재한다. 실제로 그때 가이드에게 들었던 모든 스토리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가우디 작품을 보여주었을 때 그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왔다고 어느 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구엘공원에서는 타일로 만든 개구리 자석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는 건축물이 그려진 컬러링 북을 샀다. 아직도 그것은 그때의 기억을 살려준다. 정원이가 그 기억의  끝을 잡고 꼭 다시 한번 바르셀로나를 가 보았으면 한다.

투어가 끝난 뒤 우리는 람브라스 거리로 갔다. 축구를 좋아하는 정원이에게 FC 바르셀로나의 모자, 가방 축구공을 사 주었다. 동양의 아이가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고 축구공을 들고 있으니, 바르셀로나 사람들 모두 친절하게 인사를 해 주었다. 정원이 기억 속에 스페인 사람들은 인사 잘해주는 친절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여행을 가선 현지의 물건을 사는 일은 중요하다. 현지인들처럼 시간과 공간을 누리는 것이다.

거리를 걷다가 보케리아 시장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본 납작 복숭아를 본 정원이는 복숭아가 둥근 것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훗날 어느 곳에서 네모난 복숭아를 만나더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여행이다.


짧은 시간의 바르셀로나 여행을 마쳤다. 그곳을 다녀왔으니 다 안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저 우리가 보고 느낀 만큼의 바르셀로나가 있는 것이다. 여행을 가서 다시 그곳을 오지 않을 것처럼 여행하지 않는다. 욕심부리지 않고, 선택한다. 바쁘지 않게 충분히 누리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야 아쉬워서 또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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