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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정치적인 종교의식, <콘클라베>

프란체스코 교황의 선종과 영화 <콘클라베>

by 낭만박사 채희태

어제 영화, <콘클라베(Conclave)>를 보고 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란체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했다. 콘클라베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추기경들이 모이는 비공개회의를 말한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선종하셨으니, 곧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콘클라베가 진행될 것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의 선출 과정이 얼마나 정치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에서처럼 교황이 선종하자 곧바로 전 세계 108명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으로 집결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진행된다. <콘클라베>는 마치 수능 출제처럼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가운데 전체의 3분의 2 이상 지지를 얻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이 가톨릭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교도와의 전쟁 불사를 주장하는 극단적 성향의 "테데스코"를 지지하는 추기경들은 많지 않지만, 테데스코의 주장을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추기경들은 분열되어 있어 자칫하면 중세도 아닌 21세기에 종교 전쟁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영화를 보는 내내 기본으로 깔린다.


영화, <콘클라베>의 주요 인물들. 출처: 나무위키

테데스코의 반대편에 서 있으면서 가장 유력한 교황후보는 "트랑블레" 추기경이다. 하지만, 콘클라베를 관장하는 "로렌스" 추기경은 교황이 선종 직전에 트랑블레 추기경을 파문했다는 첩보를 전해 듣는다. 뿐만 아니라 경쟁자인 "아데예미" 추기경을 견제하기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벨니니" 추기경을 지지하는 로렌스는 그 사실을 벨니니에게 알리지만, 교황 자리에 별 뜻이 없는 벨니니는 테데스코의 선출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트랑블레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역설적인 명대사가 등장한다.


너무 순진하네요.
콘클라베의 목적은 신의 뜻이 아니라,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로렌스는 교황에 뜻이 없는 벨니니 추기경이야말로 교황의 자리에 가장 걸맞은 교황 후보라고 생각하지만, 투표가 진행될수록 교황 선출은 미궁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엔 정말 상상도 못 할 반전이 마련되어 있다. 그 결말을 이야기하는 것은 식스센스에서 부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는 걸 스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 여기기에 자제한다. 영화의 내용이 다름아닌 교황의 선출을 다루었다는 걸 감안하면 가히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파괴력을 지닌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콘클라베>를 대표하는 명대사는 단연 로렌스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시작하며 하는 연설이다.


확신은 화합의 가장 큰 적이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십자가에서 확신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습니다.
믿음은 살아 움직이고
의심과 함께 존재합니다.
만약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는 없을 것이고,
더 이상 믿음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종교는 믿음이라는 확신을 요구한다. 반면, <콘클라베>는 역설적으로 의심이야말로 신앙의 본질임을 상기시킨다. 확신을 요구하는 것은 비단 종교뿐만은 아니다. 신념을 중심으로 단단한 성을 쌓아 올리고 있는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국룰이 있는데, 바로 종교와 정치 논의의 금지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념과 신앙이라는 확신으로 이루어진 정치와 종교 이야기로 인해 적지 않은 커뮤니티가 깨져 왔기 때문이다.


최근 한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니, 온라인 커뮤니티뿐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금지하는 움직임들이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천동설을 믿었던 중세 선조들의 확신이 우습게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 나의 확신이 언젠가 후손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확신 대신 "의심하고, 주저“하는 태도로 살아가길 권한다. 그렇다면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굳이 금기시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확신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열린 대화야말로 벼랑 끝으로 향하는 인류에게 필요한 구원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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