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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과 상연]

7화까지 보고 쓰는 성급한 후기

by 낭만박사 채희태

요즘 부쩍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사실 작년엔 박사학위라는 큰 산을 넘어야 했기에 공중파와 케이블에 OTT까지 가세해 제작해 대는 드라마를 챙겨 보는 것이 너무 버거웠다. 예전엔 드라마나 영화, 만화를 보고 나면 후기 한 편이 뚝딱 써졌는데, 박사논문을 쓰며 망가진 글쓰기 습관 때문인지 드라마를 보면서도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도 멀리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드라마를 보며 조금씩 과거의 폼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챙겨보는 드라마 수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동시에 최대 3편 정도가 고작이지만… 얼마 전엔 [에스콰이어],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그리고, [첫, 사랑을 위하여]를 봤고, 지금은 [폭군의 셰프], [삼체] 그리고, [은중과 상연]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중 오늘은 [은중과 상연]의 중간 후기를 써 보려 한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의 핵심 주제이자 소제는 첫 화에 소개된 "존엄사"인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다시 그 주제가 떠오르긴 하겠지만, 7화까지 본 현재, 존엄사보다는 드라마를 관통하는 은중의 “추억 복기”가 더 흥미롭게 느껴져 성급하게 후기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론을 보고 나면 지금의 이 생각이 묻힐 것만 같아서...


인간들이 뒤엉켜 사는 사회에서 문제는 결국 인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다. 의혹의 불씨는 사실과 무관하게 각자의 경험, 지식, 신념 등에 의해 편집되고 왜곡될 뿐이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며 처음엔 은중 역의 김고은에게 감정을 이입했다. 그래서 은중이 절교한 친구 상연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을 했다. 아직 결말까지 본 것은 아니지만 상연(박지현)은 사실 은중과의 우정을 깨지 않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 한다. 그 최선 중에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한 거짓말도 포함되어 있다.


은중이 상연과 절교를 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거짓말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먼저 은중은 상연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나중에 은중은 상연으로부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전해 듣는다. 은중은 거짓말을 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이미 상처받은 마음을 그 이전으로 되돌리지는 못한다.


은중은… 상연이 타고난 재능과 환경, 그리고 상연의 의도와 무관하게 주어진 모든 존재의 전제들을 질투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은중과 상연]은 철저히 은중 관점의 "추억 복기"로 진행된다. 은중이 무사히 복기를 마치고 나면 깨닫게 될까? 상연은 사실 아무런 잘못이 없고 문제는 결국 마음을 어쩌지 못했던 은중 자신이었다는 걸?


낭만닥터 김사부는 [시즌2]에서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제자의 질문에 몰라도 된다고, 어떻게 다 알고 살겠냐고 답했다. 인간의 불행은 어쩌면 너무 많이 알고 있거나, 모두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소위 “만능감”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권력이 주는 만능감으로 인해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으며, 과거의 진보는 신념에 대한 만능감에 빠져 사실상 진보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지식을 만능감으로 포장해야 하는 교육은 범람하는 정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꼰대의 성에 갇혀버린 것은 아닐까?


난 최근 근대 이후, 중세 시대의 신이 차지했던 자리를 꿰차고 앉은 소위 전문성과 각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문성이 가지고 있는 만능감과… 은중과 상연, 그리고 본의 아니게 둘 사이에 끼게 된 상학의 어긋나는 마음들을 지켜보며 각자의 만능감이 가지고 있는 비합리성에 주목해보면 어떨까?


Post Script.

남주 김상학의 표정에서 자꾸 [더 글로리]의 손명호가 떠올라 가끔씩 몰입감을 방해한다. ㅎㅎ

[더 글로리]에서 손명호 역을, 그리고 [은중과 상연]에서 김상학 역을 맡은 배우 김건우. 이렇게 선하게 생긴 사람이 어쩌다 학폭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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