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에 라프 시몬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하게 되면서, 라프 시몬스가 항상 관심을 가져오던 시대정신에 대한 담론이 프라다에서도 열리게 되었다. 작년 9월, 21년의 컬렉션을 공개하면서 소비자들과 함께 두 디렉터가 대담을 나누었던 것 또한 유튜브로 공개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하이엔드, 럭셔리, 프리미엄 브랜드들에 대한 이해도도 없고 관심도 없었지만 이런 행보를 통해 무엇이 그들을 차별화하는지 어느 정도는 가늠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단순히 비싸고 예쁜 제품을 만든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런 캠페인 덕분에 프라다라는 브랜드가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위 사진의 프라다 캠페인 사이트(https://www.prada.com/SS21-submission-page/ko.html)를 들어가게 되면 다음의 화두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답변을 할 수 있다. 답변 내용은 프라다에 전달되며 추후 캠페인을 설명하는 아카이브 북에 활용되는 기회도 주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쫄보라서 그냥 혼자, 지금의 사고방식으로 이 화두에 답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읽으면 어떤 기분일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학창 시절 논술대회에 참여하는 기분이라 재미있다.
Q - 여러분에게 미래는 로맨틱한가요? (Is future a romantic idea for you?)
나에게 미래란 로맨틱보다는 realistic, chaotic에 가깝다.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 생각도 미래의 언젠간 바뀌게 될 것이기에 그만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현실적인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전형적이지만 오히려 과거가 romantic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Romantic 했던 순간들을 취사선택해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모습, 내 상황을 그 당시엔 상상하지도 못한 채 보냈던 순간들 자체가 오히려 더 낭만적인 순간처럼 느껴진다. 애초에, 낭만이라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과거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Q - 기능이 가진 역할은 무엇인가요? (What role does function have?)
기능은 무엇인가를 계속되게(continuable), 혹은 가능하게(usable) 하는 것이다. 세상에 기능이란 단어가 적용되지 않는 존재는 자연밖에 없다. 자연의 존재들은 기능에 의해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사람과 사물에게는 그 존재가 지속되기 위해서, 어떤 '기능'을 갖추면 비로소 존재가 계속되게, 가능하게 된다. 지금의 사람은, 더 이상 자연의 존재가 아니게 됐다. 기계가 돌아가기 위해 부품이 필요하듯, 이 사회가 돌아가기 위한 부품으로써 존재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Q - 새로움이란 여전히 의미가 있나요? (Is new still relevant?)
새로움이란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의미가 있다. 새로움이 있기에 오래된 것도 의미가 있다. 물론 새롭다고 해서, 오래됐다고 해서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의미가 있는 것이 의미 있다.
Q - 언어로 생각하나요, 이미지로 생각하나요? (Do you think in languages or in images?)
생각은 언어로, 상상은 이미지로 한다. 이것이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다른지, 어떤 문화권의 사람인지에 따라 다른지, 혹은 개개인에 따라 다른지 궁금해지는 질문이지만 우리가 생각이란 것을 하는 건 말로 옮기기 위해, 글로 쓰기 위해, 행동으로 표현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닐까. 다만 상상이라고 한다면 언어로 형용하는 것이 힘들어 이미지로 맥락을 그리는 편이다.
Q - 창의력이란 재능인가요, 기술인가요? (Is creativity a gift or a skill?)
창의력은 재능이다. 타고나는 감은 절대 후천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갈고닦아도 그건 정교함의 기술이지, 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로 창의력에 근접할 수 있는 것은 혁신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Q - 자신의 모순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충분한가요? (Are you confident enough to accept your contradictions?)
애초에 자신감이 충분해야만 자신의 모순을 수용할 수 있는가? 그것은 자신감에서 나오는 자세라기보다는 지혜에 가깝다고 본다. 나는 나의 모순을 수용할 수 있다. 오히려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취약점을 알고 고치는 것이 나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지적당한 모순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자아, 정체성일 뿐이다.
Q - 온라인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나요? (Do you speak more freely online?)
온라인은 오히려 의견을 표출하는 데 있어 자유를 제한한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의 시민이라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는 것은 꽤나 조심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으로 남으며 데이터가 된다. 데이터로 움직이는 시스템 속에서, 오히려 온라인은 가다듬고 절제된 생각을 말하게 만든다.
Q - 어떤 것이 정말 새로울 수 있을까요? (Can something be truly new?)
정말 새로운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나타남으로써 누군가의, 혹은 모두의 시야와 경험을 확장하며 세상을 바꾸는 것과 같다. 전에 없던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 그것은 독특하고도 새로운 것이다.
Q - 우리는 속도를 줄여야 할까요 높여야 할까요? (Should we slow down or speed up?)
우리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특히 대한민국의 속도는 적응하기 너무 어렵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속도가 중요하다지만, 도대체 어디까지 도달해야 충분한 것인가? 더디더라도 성장할 수 있다.
Q - 독특함과 새로움은 어떻게 다른가요? (How is unique different from new?)
독특함이란 다른 것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그것이 꼭 새로울 필요는 없다. a, b, c, d, e,.... 인 세상에서 ㄱ이면 된다. 꼭 새롭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군집화되는 것들 사이에 다른 하나면 된다. 반면 새로움은 그야말로 전에 없던 것이다. 처음 보는 것이 기존의 것과는 다르고, 독특할 수 있지만 매번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때로는 같을 수 있다. 이미 존재했으나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독특함을 새로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다의 21S/S 우먼스 컬렉션. 소비자들의 질문에 대한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의 대담도 담겨있다.
프라다의 21F/W 맨즈웨어 컬렉션. 마찬가지로 소비자들과 두 디렉터의 대담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