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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과앎

모순(矛盾)의 모순적 대결

전하영의 일상에 대한 전지적 평생학습 시점

by 삶과앎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이나 말을 뜻하는 모순(矛盾)은 한 자 창 모(矛)와 방패 순(盾)으로, 중국 초나라 때 한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창은 어떤 방패라도 다 뚫을 수 있다 하고, 방패는 어떤 창이라도 다 막아낼 수 있다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이다. 당연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상인에게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찔러봐라 하며 야유를 보냈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창이 이길까? 방패가 이길까? 만약 세상에서 가장 강한 창과 방패를 각각 들고 있는 사람이 만나 대결을 하면 누가 이길까? 나에게 그 창과 방패 둘 중 하나를 가지고 싸우라고 하면, 나의 선택은 너무 쉽다. 단연코 창을 선택한다. 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창과 방패의 기능과 역할에 있다.


운동 경기에서 공격적인 팀과 수비적인 팀이 만나면 흔히들 창과 방패의 대결이다라고 말을 한다. 이는 창과 방패를 대등하게 놓고 하는 말이다. 운동 경기든 어떤 대결이든 창과 방패가 과연 대등할까? 결단코 아니다. 창의 핵심적인 기능은 방패를 찌르는 것이 아니라 방패를 들고 있는 사람을 찌르는 것이다. 반면에, 방패의 핵심기능은 창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방패는 오로지 창의 움직임에 맞춰 대응해야 하지만, 창은 방패를 찌르는 것이 아닌 방패를 피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기에 대등한 대결이 될 수 없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창이 방패를 뚫기 위해 애쓰는 모순적인 대결이 발생하고 만다. 평생교육사업을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업에 참여하는 잠재적 학습자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자신이 잘하는 것 위주로 기획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획을 의뢰한 담당자 또는 기획에 참여한 동료 기획자들과의 치열한 고민과 의사결정 과정이 수반되어야 잠재적 학습자에 맞는 명확한 타게팅이 가능하다.


샘 케이너 외의 '참여적 의사결정 다이아몬드'를 보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창과 방패의 대결에만 집중하다 보면 익숙한 대안만 찾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방패를 피하기 위한 창끝을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지 궁리(확산지대) 하면서 으르렁 지대에 들어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건강한 갈등을 수반한 토론)을 거쳐 더 단단해지고 세련된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출처 : 『민주적 의사결정 방법론 – 퍼실리테이션 가이드』(샘 케이너 외 지음, 구기욱 옮김, 2017)


문득 떠오른 모순(矛盾)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왠지 모순적 상황을 담고 있다는 생각에 쓰기 시작한 글인데, 이 글 또한 모순에 빠지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는 게 어렵다는 익숙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평생학습은 자기주도성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학습을 해야 하듯, 글 쓰기도 이렇게 졸필을 반복해서 쓰다 보면 나아지리라. 창을 거꾸로 세워 잡아 펜이 되도록 갈고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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