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외출 할 때, 꼭 가지고 다니는 가방 속에 뭐가 들어있나요?'
질문을 받고 잠시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저는 가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대체 뭘 들고 다니냐고요?
덜렁 덜렁 빈 손으로 다닙니다. 어쩔 수 없이 짐이 생긴다면, 비닐봉지를 들고 다닙니다. 어쩌다 생긴 쓰레기들을 모아서 버리기 좋구요, 아무렇게나 던져놓기도 좋습니다. 애초에 비닐봉다리에 넣어가지고 다닐만한 것들은, 잃어버려도 무방한 것들이니까요.
중요한 것들은 제 주머니 속에 있습니다. 차키랑 핸드폰이랑 카드. 이어폰은 제 귀에 이미 꽂혀있고요.
너무 쿨한 거 아니냐고요?
한 때 거북이 등딱지처럼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니던 시절이 제게도 분명 있었습니다. 강사이자 웹툰 작가지망생이었을 때, 도합 5키로가 넘는 노트북과 타블렛을 이고 다니면서 커피숍 유목민으로 살았습니다. 그 때 어깨가 시큰거릴 정도로 가방을 메고 다닌 탓일까요. 이젠 며칠 자고 오는 경우가 아닌 이상 에코백 조차 들고 다니질 않습니다. 밖에서 만난 친구가 '그런데 너 가방 어쨌어? 지하철에 두고 내린 거 아니야?' 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하지만요.
적다보니 아무리 그래도 마흔이 다 되어가는 사회인인데 제대로 된 가방 하나 없다는 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가방을 하나 사볼까? 잠깐 생각 해봅니다. 하지만 역시 이렇다 할 가방의 디자인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가방을 들고다니는 제 모습이 상상 되지 않습니다. 이건 마치 브래지어와 같은 맥락입니다. 한 번 노브라로 다니면 너무 편해서 다시는 브래지어를 차고 다니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처럼 말입니다.
혹시 길을 걸어가다가 양 주머니만 불룩한 채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있는 여자를 본다면,
[저 사람은 저게 편해서 다시는 가방을 사지 않을 사람이구만] 하고 생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