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새로운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안녕, 나의 꽃. 한동안 편지를 쓰지 못했어요.
그것은 그 동안 우리가 글보다는 시간을 나눴기 때문이지요. 사진과 영상, 게시물 처럼 눈에 보이는 것보다 순간 순간의 눈맞춤, 살짝씩 닿은 마음들 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간직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부터 샤론님을 샤론, 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대를 나의 꽃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로 그래요. 샤론은 그 이름처럼 저에게 꽃이었어요.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표현이 있거든요. '내 안에 그대는 사이 사이 피어있는 꽃이길 바래요.'
하추리에서 보낸 3개월을 돌이켜보니, 그 사이 사이에는 마치 들꽃처럼 샤론과의 추억들이 피어 있었어요. 오롯이 나로 살고 싶다고 모든 것을 밀쳐내고 이 곳으로 올 때- 차 안에서 부은 두 눈으로 만난 우리 두 사람. 가평휴'개'소를 발견하고 깔깔 거리며 웃고, '두경 데이'를 만들고, 냇강에서 춤을 추고, 친구들을 초대하였지요. 풍성하고 빛나는 날들이었습니다. 그 3개월을 마무리하고, 샤론은 가리산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 하추리에 계속 남아있기로 했고요.
샤론 없는 엠케이는 어떤 한 주를 보냈냐고요?
거의 슈퍼맨처럼 날아다녔지요! 하하.
금요일에 인제에서 첫 강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화요일에 부산까지 면접을 보러 다녀온 뉴북 프로젝트가 결국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물론 아쉽고 섭섭해서 잠깐은 시무룩 했었지요. 그런데 실은 그보다 놀라운 것이 제 태도였답니다. 함께 책을 준비한 수정님이 실망할 때도 '에이, 다시 준비하면 되죠' 하고 덤덤하게 말하고, 사람들에게 '저 결국 떨어졌어요. 헤헤' 하고 시원하게 웃는 제 모습이 제가 봐도 좀 쿨내가 나서 몹시 의외였습니다. '나, 상당히 질척거릴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앗쌀한 면모도 있는 인간이었어?!' 했달까요.
'앗쌀하다'의 어원을 찾아보니 '담백하게, 산뜻하게, 간단하게, 깨끗이'를 의미하는 일본어 '앗사리(あっさり)'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샤론, 나의 꽃.
그대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저는 담백하게 그대를 보내줄 줄도 알게 되었고요. 그러고도 다시 만날 땐 산뜻하게 웃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사랑을 표현할 땐 깨끗한 마음으로 그대의 행복을 빌 줄도 압니다. 이 정도면 저, 앗쌀한 인간 맞지요?
이 것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은 것을 모아둔 성소 입니다. 두 명의 어린왕자 중에 한 친구를 그대에게 보내기로 했지요. 앉아서 한 곳을 가만히 응시하는 어린왕자가 샤론, 우뚝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왕자가 엠케이. 우리는 서로 무엇을 바라보기로 했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제가 하고자 하는 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일입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 시간을 남기는 일. 삶을 살아내고 겪어보고 그 것을 남기는 일. 나를 통과하여 사랑이 드러나게 하는 일.
단번에 눈에 드러나는 변화와 성과가 없다 하더라도, 앗쌀하게 괜찮습니다.
그대가 당장 내 옆 방에 없다 하더라도, 담백하게 괜찮습니다.
어차피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그대를 꽃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고, 오늘도 이 쏜살같은 시간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아 기록하고 있으며, 내 마음은 여기 이 자리에 분명하게 살아 숨쉬고 있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P.S: 오늘 코칭 고객이자 나의 벗이 인제 하추리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하추리 카페 위 쪽 길로 따라 걸었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냇강을 발견했습니다. 맙소사, 3개월이 지나도 발견하지 못했던 풍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강 위에 누워 둥둥 떠다녔어요. 그리고 창작실에서 전자 드럼 켜는 법을 잠깐 배웠습니다. 물론 저는 악보 보는 법도 모르지만요. 하나씩 새로운 것들이 새록 새록 피어납니다. 보지 못했던 세상을 발견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