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것에서 해야하는 것으로 바뀌어 갈 때
안녕, 샤론.
근 한 달만의 편지입니다. 책상에 앉아 이 편지를 쓰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나의 꽃. 마음이 엉킨 실뭉치 처럼 마구 뒤섞이게 되니까, 대체 어디서부터 꺼내놓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대의 넓은 이해심에 기대어 이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습니다.
인제에서의 8월, 말복과 처서를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뙤약볕 같았던 제 마음이 차츰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하루 아침에 온도가 바뀐 가을날처럼 한 톤 무거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축제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 느끼는 후유증- 일명 '현타'라고도 하지요. 저에게 그 '현타'가 진하게 찾아온 시기였습니다. 무엇으로 현타를 느꼈느냐고요?
1. 나는 창작자로 살고 싶어서 인제에 왔다.
2. 그러나 정작 창작을 했던 시간보다 강의를 하고, 그에 관한 서류를 쓴 시간이 더 길었다.
3. 그 와중에 인제 사람들과 계속 교류하고 서울에서 온 손님도 계속 맞이했다.
4. 최근 나에게 주어지는 흐름은 계속 '청년 작가촌'에 대한 것이다.
5.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은 대체 뭐지? WHAT DO I WANT?
어제는 이력서를 다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지요. "강사로 살아온 물리적인 시간이 이렇게나 길었구나. 한 마디로 나는 [창작자가 되고싶은 강사] 였던거지, [창작자] 로서 산 건 아니었던거야. 맙소사. 이게 현실에서의 내 모습이었구나!" 내가 찍어놓은 발자국은 이미 그렇게 살아온 모습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네, 저는 강사로 살았어요. 시작은 창작을 위한 빌드업이었을지 모르지만, 창작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이 이력서는 결국 또 강사 일을 하기 위해서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경력이 빵빵한 이력서가 아니라 어설프더라도 제 진심과 손길이 그대로 묻어난 그림 포트폴리오였어요. 내가 쓴 시간의 결과물을 이력서 몇 장으로 실감해보니까, 좀 슬프더라고요. 원하는 것에 물리적인 시간을 쓰면서 살지 않았다는 증거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제 모든 모험의 시작은 '작업실을 갖고싶어'에서 출발했습니다. 2017년에 자영업에 뛰어든 것은, 공식적으로 내 작업실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버티고 불안해하다가 결국은 코로나를 맞이하며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2024년. 인제에서 서울까지 매주 오갈 수 있었던 에너지도 실은 거기서 나왔습니다. 바로 '절박함'. 내 공간과 시간이 필요해서, 그럴 구실을 찾아 본능적으로 나를 내던지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쓰이는 곳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창작촌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늘 이렇게 창작할 힘이 남아있지 않아 제대로 그리고 쓸 수 없다면? 그럼 나는 대체 뭐지?
WHO AM I?
며칠 전에 지재미 국장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긴 대화 속에서 유독 선명하게 가슴에 남는 말이 있었습니다. '창작 하고 싶어서 온거죠? 그 갈증이 느껴져요. 나는 산에 오르지 못하면 미칠 것 같아서 귀촌 했거든. 자기는 창작을 못하면 갈증나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서 여기까지 온거잖아. 내가 그 갈증 나는 느낌을 알거든요.'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면서 그 말이 유독 내 가슴에 남았다는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포인트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가치 있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저의 창작도 가치가 있을 것이고, 창작촌을 만드는 일도 가치가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문화예술 강의를 계속 이어서 하는 것도 물론 가치가 있겠지요. 그러나 이 모든 가치를 모두 다 가져갈 수는 없다는 것, 저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다.
-오프라 윈프리 <이것이 사명이다>-
소명이라는 말은 영어로는‘Calling’이라고 하는 데 ‘왕이나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사명에로의 부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소명을 받는 자는 부르는 자의 권위가 크기 때문에, 그 부름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소명에는 그저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사명이라는 말은 영어로는‘Mission'으로 어떤 책무를 맡은자(혹은 소명을 받은 자)가 당연히 가져야 할 자연스러운 의무나 책임 등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해야만 할 어떤 과업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소명은 부름이고, 사명은 소명 받은 자의 과업입니다. 소명이 없으면 사명도 없습니다. 사명감이 없는 자는 당연히 소명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네, 저의 사명(Mission)은 창작이 확실합니다. 저는 그릴 수 있는 재능이 있고, 그로 인해 설레이는 꿈도 꿔봤고, 함께 모험도 했으며, 그 때문에 아파도 봤습니다. 이걸 제대로 쓰지 못하고 죽을까봐 항상 조바심 나고 부담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나의 소명(Calling)은? 나를 계속 부르는, 나를 향해 열리고 있는 것은?
'창작자로서의 건강한 자립.'
'나 처럼 창작을 갈망하는 이들과 창작자로서의 삶을 잘 살아낼 것.'
'창작할 수 있는 공간, 창작하는 사람들과의 교류, 창작물이 경제적으로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할 것.'
저에게 주어진 매일의 사명 Mission 을 해내면서, 창작자들의 소명 Calling 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 여정에 함께 있어줄 나의 소중한 친구, 샤론. 그대의 소명 Calling 에 우리의 사명 Mission 도 있음을 느끼고 있어요. 이 모든 과정이 사랑 안에서 충만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