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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ween time Jul 30. 2020

미국에 남고 싶은 이유

이상 혹은 현실과 욕심 사이에서

작년 연말부터 우리 부부는 미국 영주권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왔다. 여기저기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변호사를 소개받기도 하고 상담을 받기도 했다. 어떠한 최종 결정에 이르기 전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게 되었고 바이러스로 인해서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진작에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고 후회가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는 영주권을 안 할 운명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미련이 남아 있다. 


요즘은 미국 생활이 정말 쉽지 않다. 21세기 선진국으로서 위세를 과시하던 미국이 내가 오니 갑자기 의료 후진국이 된듯한 요즘 사태를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아플까 봐 무섭고 바이러스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간들은 하염없이 답답하기만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영주권 생각이 나고 욕심이 난다. 미국 생활이 힘들고 어렵다고 계속 말하면서도 내 마음에 남아있는 영주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대체 왜 나는 미국에 남고 싶을까?


미국 생활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정말이지 딱 중간이다. 너무 좋은 점도, 너무 힘든 점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희석시켜서 비슷한 평균에 이르렀다. 미국의 생활을 세 마디로 요약해보면 '새롭고, 좋은데, 어렵다.' 반면에 한국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편안하고, 지루한데, 익숙하다.'


처음 한국을 떠나서 미국에 올 때, 미국에서의 생활이 어쩌면 우리가 계획했던 것보다 길어지는 기로에 섰을 때,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여기에 남고 싶은지 돌아가고 싶은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고민했고, 그리고 하나의 답을 만들어두었다. "나는 어디 살든 사실 괜찮아."라고.

  

그것은 정말이지 진심이다. 어디에 살든 이제 그거에 맞춰서 살 수밖에 없다. 선택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미국에 와서 많이 배웠다. 한국에서 직업을 갖는 것도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는데, 미국에 와서 한국인이 취업이라니. 남편이 지금껏 잘 버텨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앞으로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정했다.


그런데 이 마음 한구석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미래에 대한 나의 고민과 번뇌다. 나의 미래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의 2세를 향한 나의 욕심이 내 발목을 계속 붙잡는다. 비록 지금 미국이 큰 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라는 언어의 파워는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어른들이 기술하나 만 있으면 밥은 안 굶는다고 했었는데, 기술 하나가 없어 아쉬운 나로서는 내 자식에게 '영어'라는 기술이라도 물려주고 싶다. 여기에 남아서 말이다.


막연히 이곳에서 아기를 키우면 적어도 영어로부터 고통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내 욕심이 아직 우주 어딘가에서 여전히 나에게 오지 않은 아이를 향한 나의 미련이다. 이런 나의 집착이 우리 아기가 나에게 오는 시간을 더디 만드는 거라고 스스로 채찍질하면서도 기왕 이곳에 살게 되었으니 미국에서 아기를 낳고 싶은 내 욕심에 부응해주지 않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래 사실은 원망이고 분노이다. 내 욕심에 따라주지 않는 것이.


욕심부리지 말자고 다짐해도 소용없다. 집착하지 않기로 결심해도 아쉽다. 그런 것은 또 그런 마음대로 차라리 내버려 두는 편이 속편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언제 한국에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감과 영주권은 멀어져만 가는 현실이 나를 옥죄어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고 싶은 이유는 역시 그거다. 미래의 아기와 영어.


내 욕심을 마주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늘 좌절하고 분노하면서도 기다림은 계속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돌아가든 여기에 남든 아기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그렇게 내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무언가를 하려고 생각해도 손바닥 한 줌 모래처럼 빠져나가 버린다. 다시 돌아가는 쳇바퀴처럼 어느새 처음 그곳에 다시 돌아가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미국에 남는다 해도 결코 힘든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한국보다 열 배, 백배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 투성이일 것이다. 그런 플러스 마이너스를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일은 조금 더 평온한 마음이 되기를. 내려놓음이 가능한 날들이 나에게도 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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