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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Nov 16. 2021

운민의 삼국지여행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고도 낙양을 찾아가다.

이번에는 삼국지에서도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종종 등장하고, 고대 중국 역사에서 도읍지로서 역할을 하였던 낙양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입지조건이 탁월한 낙양의 위치

허난성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원에서 약간 서쪽에 위치하고 있지요. 지형의 조건이 특이한게 도시와 평원을 산악지대가 둘러싸여 있고,북쪽에는 황하, 남쪽에는 낙수와 이수가 흐른다. 게다가 서쪽 방면의 산악지대는 대규모라서 통로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죠. 그래서 동쪽으론 호뢰관이 서쪽에는 함곡관이 위치한 천연의 요새라 할 수 있습니다.

중원에서 낙양을 거쳐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호뢰관(사수관) 복원도

현재 터만 남아 있는 호뢰관터

일단 워낙 입지 조건이 좋아서, 무려 13개 왕조가 1,586년 간 이곳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주요 왕조로는 9개이기에 "9조고도(九朝古都 -9개 왕조의 도읍)"라고도 합니다.  일단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동주), 후할, 조위, 서진, 북위, 수나라, 5대 10국의대10국의 후량 등이 됩니다. 여기에 후당도 낙양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제2수도 격이 된 것도 서주, 전한, 수나라 , 당나라, 송나라 등 무려 여덟 왕조가 있었습니다.

지형의 조건이 특이한 게 도시와 평원을 산악지대가 둘러싸여 있고,북쪽에는 황하, 남쪽에는 낙수와 이수가 흐른다. 게다가 서쪽 방면의 산악지대는 대규모라서 통로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죠. 동, 서쪽에 천하제일의 관문이 위치해 수도로서 위치는 괜찮은 편입니다.

동탁에 의해 불타버린 낙양

후한 말기 동탁이 반동탁 연합군을을 피해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낙양은 초토화가 됩니다. 거기다 조조가 도성을 허창으로 옮기면서 잠시 소외되었지만 곧 낙양 복구를 시작했습니다. 조비가 즉위해 위나라가 세워지자 다시 낙양을 도읍으로 잡았으며, 허도는 허창이란 이름으로만 우대받았을 뿐 수도의 기능은 상실되고 모두 낙양으로 이주되었습니다. 조조와 조예가 낙양에 화려한 전각들을 세우면서 낙양은 곧 수도의 위엄을 찾았습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곳 주민들은 동 씨를 매우 싫어하는 반면에, 조씨는 대우해 준다고 합니다. 

이하 강변에 펼쳐진 용문석굴의 장관 


낙양이란 도시는 첫인상은 실망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우중충한 날씨도 날씨지만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한 평범한 공업도시의 이미지가 강했던 거죠. 하지만 낙양은 관광객이 시안에 비롯해 많지 않아서 북적거림이 덜하기도 하고, 군데 군데 관광포인트가 꽤 있습니다. 낙양에 가서 꼭 한 군데를 가봐야 한다면 중국 3대 석굴 중 하나인 용문석굴을 가봐야 하죠. 개인적으로 정말 볼게 많아서 인상 깊었습니다. 측천무후를 모델로 만들어진 노 사대 불이 높이 18미터로 우뚝 서있고 강가 양옆 사이로 석굴이 가득한 풍경이 장관이죠. 

낙양 북쪽 황하유역에 자리하고 있는 북망산 구역

북망산 구역의 고묘박물관 옆에자리한 북위 선무제의 황릉

그밖에 북망산이라고 해서 역사적인 왕이나 황제들이 많이 묻힌 지역이 있는데 거기의 고묘 박물관에 가면 주요 무덤의 내부를 그대로 재현해 놓아서 볼만 합니다. 우리나라의 의자왕과 보장왕도 여기에 묻혀있다고 합니다.

백마사의 본 구역 

백마사 경내의 태국식 사원

백마사 경내의 미얀마식 사원

인도의 산치 스투파를 모델로 만든 백마사 경내의 인도식 사원

중국 최초의 사찰인 백마사가 있는데 절도 절이지만 최근 절 외각에 태국, 미얀마, 네팔, 인도등 세계 각지의 사찰을 재현해 놓아 나름 볼거리로 이름 높습니다.

한위고성의 옛 터

시대별로 달랐던 낙양성의 위치

삼국시대의 낙양성에 대해 궁금해하실 분도 있으실 건데요. 현재의 낙양 도심과 다른 지역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 봉건시대에는 왕조에 변란이 일어나거나 바뀌게 되면 성을 전부 파괴시킨다고 합니다. 한위고성이라고 해서 낙양에서 동쪽으로 15킬로 미터 떨어져 있고,백마사 근처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지만  중국정부에서 최근에 보존을 하면서 아마 나중에는 복원공사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터 중에 영녕사터라고 있는데 여기에 있던 탑이 120미터 높이를 자랑하는 어마 무시한 크기였다고 합니다. 황룡사가 80미터니 더 높고 육삼 빌딩의 반 정도 크기라고 하죠. 낙양은 한나라 때부터 동탁이 불태우는 등 부침을 겪다가 북위 시절까지 쭉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당 시절에 지금 도심지 남쪽에 건설되었지요. 측천무후시기 제2의 도시가 생긴 겁니다.

최근에 복원을 일부 완공한 수,당 지역의 낙양성터

최근에 낙양 시가지 남쪽, 옛 수, 당나라 도읍터에 건물을 일부 복원했습니다. 주위에 모란꽃도 많이 심었다고 하니 같이 돌아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국물로 구성된 낙양 수석 요리

그밖에도 낙양에 오면 수석 요리를 꼭 먹어봐야 합니다. 24가지 국물요리가 물 흐르듯이 나온다고 해서 수석 요리라고 하는데 모든 요리가 탕에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담백, 새콤, 매콤, 달콤,짭짤함을 모두 느낄 수 있어서 질리지 않습니다. 낙양이 모란이 유명하기 때문에 계란 노른자를 이용해 모란꽃 장식을 얹은 모란 연채 등 수많은 요리가 계속 나오지요.개의 찬요리가 깔리고 16개의 국물요리를 4개씩 세트를 이루어 오는데 혼자서 먹긴 힘든 요리니까 함께 나누면 더 즐거울 것 같습니다.

낙양 관림의 입구

황제의 면류관을 쓴 관우의 모습

관우의 머리가 묻혀있는 무덤 구역

낙양에는 관우의 무덤인 관림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목 무덤이죠.조조가 제후의 예를 갖추며 무덤을 조성했고, 시간이 갈수록 관우의 위상이 높아져 묘와 릉이 아니라 성인에게만 붙을 수 있는 무성인의 예우로 수풀림자를 붙여 관림이 된 겁니다. 사당안에 들어서면 관우는 제왕의 모습으로 중앙에 서 있으며 왼쪽에는 요화 주창이 오른쪽에는 왕보, 관평이 위치해 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6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규모의 관우 묘가 자리하고 있는데 주위에는 오 백 년 가까이 된 측백나무가 둘러싸있어서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또한 근교에는 유명한 소림사도 있으니 함께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낙양의 날씨는 분지지역이라 확실히 덥고 습합니다. 괜히 국물요리가 발달한 도시가 아니죠. 여름에 오실 때 그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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