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살아 숨 쉬는 강화도
▲ 광성보 유적에서 바라본 염하와 김포의 산하 강화와 김포사이에 놓인 짧은 해협(염하)을 통해 수많은 외세가 쳐들어 왔으며, 또한 조세선이 이 해협을 지나 한강을 거쳐 한양으로 가는 주 통로이기도 했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강화를 알리는 안내판을 마주하게 되니 비로소 이 도시에 온 것을 실감한다. 인구는 7만 밖에 되지 않는 일개 군에 지나지 않지만 이 섬의 면적은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4번째 크기를 자랑한다. 물론 단순한 면적 이상으로 강화 전체에 걸쳐 역사, 문화의 향기가 두루 분포한다. 우선 강화읍내만 해도 고려궁지, 강화 성공회 성당, 용흥궁을 중심으로 두 발을 이용해 거닐 수 있다. 시장은 물론 옛 방직공장을 이용한 카페, 김구 선생이 은거했던 저택 등 여행을 한다면 이 구역만으로 족히 하루 이상은 잡아먹는다.
▲ 덕진진 남장포대 전경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양란을 거친 조선은 강화도의 해안가 전체를 둘러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곳은 구한말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강화의 해안가, 특히 김포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 해안은 방어시설인 돈대(墩臺)와 보(保)가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그중 잘 알려진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강화 외성을 구성하는 요새의 성벽을 오르다 보면 폭이 좁지만 물살이 거칠어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던 강화해협(염하)과 김포의 산하가 눈 아래로 펼쳐진다. 바다라기 보단 강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세를 싣고 한양으로 들어가는 주요 루트였을 뿐더러 수많은 침략자들이 이 물길을 따라 강화로 들어왔을 것이다.
이제 서남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단군 이래 한민족의 기상이 서려있다 전해지는 마니산을 지나게 된다. 산의 높이는 오백 미터가 채 되지 않지만 해수면에서부터 치고 올라야 하기에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여느 명산 못지않게 훌륭하고,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참성단에서 영험한 기운을 받으며 호연지기를 마음껏 내뿜을 수 있다. 이제 다시 동쪽 길상면 지역으로 가면 정족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전등사를 만날 수 있는데 그 기원이 고구려 소수림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들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 고려궁지의 입구 고려왕조는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를 임시수도로 삼아 항쟁을 이어나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터만 남은 궁궐을 유수부와 외규장각을 설치했다.
이제 고려시대로 시계의 흐름을 앞당겨 보면 이때부터 강화는 수도와 적당히 떨어졌던 이점과 임시수도로서 역할을 수행했던 시대도 있었던 만큼 쫓겨난 왕들의 유배지와 그들의 궁궐의 흔적을 더러 찾을 수 있다.
또한 강화읍에 이어 강화 남부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길상면 온수리지역은 답사객이 다닐만한 명소는 물론 읍내 특유의 정취가 살아있어 잠깐 시간을 내서 들를 만하다. 강화의 북부로 올라가다 보면 잊고 있던 북한과의 접경지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군인들과 군시설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해안가를 따라 철책선이 이중 삼중으로 쳐져 있어 분단의 아픔이 느껴진다.
▲ 철종의 잠저로 알려진 용흥궁 강화읍 한복판에 위치한 용흥궁은 철종이 왕이 되기 전 나고 자란 잠저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 철종은 용흥궁 보단 그의 외가에서 머문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북쪽으로 올라가는 초입에는 강화를 대표하는 유적이 있다. 교과서 표지로 자주 등장하는 강화 부근리 고인돌이 바로 그것이다. 고인돌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의 전형적인 형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바로 옆엔 강화역사박물관과 강화 자연사박물관과 함께 하나의 역사지구를 형성하고 있어 강화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가 되었다. 강화 본섬뿐만 아니라 부속 섬도 각기 개성이 살아 있다. 여러 섬들 중 잘 알려진 석모도와 교동도가 바로 그곳이다. 몇 년 전까지 외포리, 창후리 선착장에서 각기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각기 강화도 본섬과 다리로 연결되면서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석모도는 이전부터 해수관음의 도량 보문사의 명성이 꽤나 높았기에 찾는 사람들이 심상치 않게 많았지만 갯벌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민머루 해수욕장과 해수온천이 점차 알려지며 다시금 재조명을 받고 있다.
민통선 북쪽, 북한과 근접한 교동도는 민통선 내에 있어 몇 번의 검문검색이 까다롭긴 하지만 이 섬에는 70년대의 정취가 살아있는 대룡시장이 있어 그 수고스러움을 감내할 만하다. 이제 강화의 전체적인 틀을 살펴보았으니 강화 고인돌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강화여행을 함께 떠나 보도록 하자.
▲ 세계문화유산 강화 부근리 고인돌 강화지석묘 강화의 상징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는 부근리 고인돌군의 강화지석묘는 한반도 고인돌 중 양식을 완벽하게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경주는 불국사와 첨성대, 수원은 수원화성이 있는 것처럼 강화도 역시 그 고장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존재한다. 최근 강화 성공회 성당이 주변 정비를 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진 강화 고인돌이 이 섬을 대표하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부근리 고인돌로 알려진 이곳은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을 우회하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같은 구역 내에 2개의 박물관이 자리해 있기에 강화도의 첫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다. 단순히 거대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순함을 가져다주는 힘이 우리를 잡아 끈다.
어떤 사람은 생각보다 고인돌이 작다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탁 트인 벌판 한가운데 두 개의 받침돌로 우뚝 서서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그 어떤 건물보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 부근리를 포함해 삼거리, 오상리 등 강화 고려산 일대에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강화의 고인돌은 고창, 화순과 함께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부근리 고인돌은 대표 격인 강화지석묘를 제외하고 14개의 고인돌을 트레킹 코스를 통해 함께 둘러볼 수 있지만 상당한 시간과 체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강화지석묘 주위를 둘러보면 미완으로 남은 거대한 덮개돌과 복원된 움집이 있어 청동기 시대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거대한 석재로 세워졌다고 하는 고인돌은 전 세계 6만 여기의 고인돌 중 3~4 만기가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 강화 고인돌이 가진 역사의 비밀을 차근차근 풀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