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왜 해외로 나가고 싶으세요?

캐나다 이민 후 1년, 회고


작년 2월 말에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으니 어느덧 한국을 떠나온 지도 1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아이를 낳으니 더더욱 빠르게 느껴야 진다. 여름이를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 달 동안 한국으로 휴가를 다녀왔는데 캐나다에 1년 넘게 있다가 한국에 머무르니 두 나라의 다른 점들이 아주 잘 느껴졌다.


한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역시 "캐나다 사는 거 어때요?"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지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들이 궁금한 지에 따라서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 수도,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 나라에 오래 살다 보면 그만큼 아는 것도 많아지고,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장점도 장점이지만 단점도 눈에 들어오게 되기 마련이다. 어떤 물건이 너무 가지고 싶어서 샀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아서 실망했던 경험은 다들 있을 것 같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보다 모든 부분에서 나은 어딘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해외로 나왔는데 한편으로는 완벽한 나라란 것 없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개인적으로 살면서 느낀 캐나다(밴쿠버)의 장점

어딜 가나 붐비지 않고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친절하다. 여름이와 함께 거리에 나가면 모두 유모차를 끌고 있는 나를 배려해주고 여름이에게 웃어준다.

평균적인 임금 수준이 높다. 즉, 같은 일을 해도 여기서는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공기가 좋고 자연이 아름답다. 다운타운에서 30분만 운전하면 아름다운 풍경에서 스키를 타거나 카약을 탈 수 있다.

연중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의 폭이 작다. 여름에는 30도 미만, 겨울에는 0도 이상을 대부분 유지한다.

한국에 비해 인도가 넓고 유모차를 가지고 다니기가 편리하다. 카페나 식당들도 대부분 아기용 의자를 구비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가 무상이고 공공시설 (공원, 커뮤니티 센터) 등이 잘 정비되어 있다.

회사 문화가 가정 중심적이다.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을 못 가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거나, 아이가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퇴근해야 한다고 하면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저녁은 가족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서 6시면 대부분 퇴근한다. 한국에서처럼 회사에서 저녁 식대를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어차피 아마존은 점심도 안 주지만...)


이렇게 좋은 점들만 이야기하면 역시 캐나다가 짱이고 빨리 탈조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겠지?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고, 위에서 이야기한 장점들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단점들이 있다.


어딜 가나 붐비지 않는다 : 인구밀도가 낮아서 대중교통이 열악하고 한국과 같은 상가 밀집 구역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애초에 잠재 고객 숫자가 많지 않으니 한국처럼 맛있는 식당이나 카페가 많이 발달하지 않았다.

임금 수준이 높다 : 내가 많이 받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많이 받기 때문에 외식비, 교통비, 택배비 등 전체적인 물가 수준이 높다. 개발자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미국에서는 대졸 신입 개발자가 연봉 1억을 넘게 받는대!"라는 말은 사실은 이런 이야기이다. "연봉 1억 받으면 30% 세금 떼고 40% 월세 내고 30% 남는다." 즉 한국 화폐에 비추어서 해외 개발자의 연봉을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연봉 상승이 직접적인 생활수준 향상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공기가 좋고 자연이 아름답다 : 그만큼 환경 보전에 들어가는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금이 높다. 기름값도 한국 못지않다. 건설 허가도 잘 나지 않아 오래된 건물이 많고 월세가 비싸다.

연중 기온차가 적다 : 가을에서 봄까지는 50% 이상 비가 온다.

인도가 넓다 : 차도가 그만큼 좁아져 교통체증이 심하다.

의료 서비스가 무상이다 : 그만큼 오래 기다려야 한다. 물론 응급 상황처럼 위급한 경우엔 우선적으로 의료 처치를 해주기는 하지만, 치명적인 부상이 아니면 응급실에 가도 2~3시간 대기가 일상이다.

공공시설이 잘 되어있다 : 그게 누구 돈일까요?

회사 문화가 가정 중심적이고 퇴근이 빠르다 : 대신 성과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세상에 완벽한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복지가 좋으면 세금이 높고, 연봉이 높으면 물가가 높고, 자연이 아름다우면 도심이 심심한 법이다. 흔히 엔지니어들이 말하는 trade-off인 셈이다. 그렇기에 한국과 캐나다의 삶을 일차원적인 평면에 놓고 어디가 더 낫다고 일반화시켜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좀 심심해도 자연에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도심의 화려한 불빛들을 그리워할 수도 있을 테다. 


더욱이 한 사회에서 내가 원하는 것만 택해서 가질 수는 없다. 한국의 퀄리티 좋고 저렴한 외식 문화, 캐나다의 맑은 공기, 미국의 높은 임금 수준, 유럽의 저렴한 월세를 모두 가진 나라는 단언컨대 없다. 그래서 내가 해외에 나가서 잘 살 수 있을까가 궁금하다면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위해 가족과 친구들의 곁을 떠나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쓰면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지금 한국에서 편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버릴 수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얄궂게도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라 없어지고 나서야 내가 누리던 것들이 뭔지 알 수 있다. 해외로 나오기 전까지는 서울의 북적거림이 너무 싫었다. 서울 지하철의 번잡함, 내 몸을 툭툭 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가방을 휘두르는 사람들, 스트레스받은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의 그 답답한 분위기. 그런데 캐나다에 돌아와서 집 근처 반경 1km 내에 먹고 싶은 음식점이 없어서 차를 타고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30분째 구글맵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보니까 그렇게 사람이 많으니까 거리에 수도 없이 많은 음식점이 다 장사가 되는 거구나 싶더라.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오늘 나에게 문을 잡아주었던 인상좋은 백인 아저씨는 출근 시간의 지하철 2호선에서도 웃음을 지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After you!"라고 할 수 있을까?


장기하가 부릅니다. 아무것도 없잖어...


해외에 나와서 한국과 다른 삶을 살다 보면 조금 더 나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해외여행만으로도 그런 것들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여행객으로서 느낄 수 있는 것과 주민으로 느끼는 것은 다른 법이니까. 


누군가가 해외에서의 삶을 꿈꾼다면 묻고 싶다. 


"왜 해외에 나가서 살고 싶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