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일기 3. 마카오 타이파 쿤하거리
grabpic film 5. DAY24
하루 종일 찔끔찔끔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를 보고 대만에서 샀던 3단 우산을 들고 가 정말 유용하게 잘 쓰고 다녔다. 편의점에서 2-3,000원 주고 산 건데 작고 가벼워서 가방에 넣어도 무게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 좋다. 가방은 최대한 가볍게 다녀야지! 특히 여행지에서라면.
오늘도 <베네시안>에 갔다. 마카오에서 어쩌면 호텔보다 더 오래 머물렀던 것 같은 베네시안. 건물에 들어서면 저 멀리 카지노가 보인다. 처음엔 들어서는 것조차 꺼려했으나 이 날은 아예 여권을 손에 들고 이 로비에서 저 로비로, 또 저 로비로 돌아다녔다. 카지노를 통하면 반대편으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었건만 어제는 왜 그렇게 삥 돌아다녔던가.
아침부터 (그러나 내가 늦게 일어난 것일 뿐, 이미 점심때였다) 카지노를 가로지른 이유는 밥을 먹기 위해서. 어제 콘서트 본다고 제대로 끼니를 채우지 못해 오늘은 제대로 잘 먹고 다니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어제 미리 찾아두었던 베네시안의 맛집 <노스>로 갔다.
tip. 베네시안 맛집 <노스> 가는 법
베네시안의 맛집이라는 <노스>. 어느 블로그에서 서쪽 로비에 있다길래 서쪽 로비까지 갔으나 메인 로비 쪽에 있었다. 지구본 같은 조형물이 있는 메인 로비를 기준으로, 카지노 입구 바로 오른쪽으로 나있는 복도를 따라가면 붉은 풍등이 보인다. 그곳이 노스. 이미 카지노 안이라면 메인 로비 방향으로 와서 (서쪽 로비를 등지고 메인 로비를 바라본 상태에서) 왼쪽에 오락기처럼 생긴 슬롯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면 또 다른 출구가 보이는데, 그쪽으로 나가면 바로 붉은 풍등이 보인다.
자리에 앉자마자 마카오 맥주와 샤오롱바오, 블로그에서 본 빵처럼 생긴 것에 싸 먹는 양고기를 시켰다. 새우튀김도 먹고 싶었으나 지난 태국 여행에서처럼 음식을 남기고 싶진 않아 자제했다. 그리고 직원이 옆에 계속 서있어서 찬찬히 메뉴를 둘러보며 새우튀김을 찾을 겨를도 없었다. 아침부터 여기 찾겠다고 넓은 베네시안을 돌아다녀 힘이 빠지기도 했고. 시키고 보니 역시나 저 정체 모를 빵은 내가 좋아하는 맛이 아니었다. 칭다오의 <진취덕>에서 먹었던 그 맛. 여섯 개 중 두 개를 겨우 먹고 나머지는 남겼다. 대신 맥주는 한 잔 더!
아무리 콘서트를 위한 치고 빠지는 단타 여행이라지만 그래도 홍콩을, 마카오를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가 보아온 마카오는 영화에서 또 사진에서 보던 내가 기대한 그 홍콩이 아니었다. 흔히 홍콩과 마카오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기엔 너무나 아쉬워 지금 내가 있는 곳과 가까우면서도 내가 생각한 홍콩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법한 <쿤하거리>에 가보기로 했다.
무빙워크가 꽤 길었으나 속도가 꽤 빠른 편이라 쿤하거리까지 금방 도착한다. 그리고 무빙워크를 타고 가는 길이 예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무빙워크에서 내리면 이런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가면 쿤하거리, 오른쪽으로 가면 이곳에서 나름 유명한 교회가 나온다. 사실 어느 쪽을 먼저 가든 넓지 않아 전부 둘러볼 수 있다.
내 목적지인 쿤하거리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했으나 아직까지는 내가 생각했던 홍콩의 모습이 느껴지진 않았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더 신나게 구경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슬렁슬렁 걷다 쿤하거리의 메인로드인듯한 곳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피한 골목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모습을 보았다.
grabpic film 6. NOIR
내가 생각했던 홍콩
이 좁고 긴 골목을 보는 순간 그리고 골목 뒤로 펼쳐진 촘촘하게 서있는 아파트를 보는 순간, 나는 왜 홍콩을 다녀온 지인들이 내게 "너는 홍콩을 정말 좋아할 거야."라고 했는지를 알았다. 이 곳을 찍고 싶어 서둘러 그랩픽 어플 속 칼라 필름을 아무렇게나 다 써버리고 흑백 필름인 NOIR를 다운 받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골목만을 찾아다녔다.
어떻게 보면 대만이나 중국과 크게 다른 바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이 골목에 있는 모든 게 달라 보였다. 내게 이번 여행은 오로지 '엑소'로만 가득 채워진 상태였는데 '여행'이 삐죽하고 고개를 들이민 기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카오는 충분히 봤으니 다음엔 안 와도 되겠다'라 생각했건만 이 곳을 돌아다니며 '나중에 다시 한번 제대로 와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홍콩 본섬과 호텔만 가득한 마카오가 아닌 진짜 마카오로.
한낱 이방인에 불과한 내가 '진짜 마카오'라느니 '내가 생각했던 홍콩'이라느니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이방인이기에 바라는 모습이 있지 않은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보던 그 모습을 기대하고 오는 것도 있고. 아무튼 비로소 내가 보고 싶던 것을 보았다. 백 퍼센트 부합하는 모습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런 쓰레기마저 홍콩 같고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렇게 좋았던 쿤하거리를 뒤로하고, 마카오에 오는 모든 이들이 가는 것 같은 <세나도 광장>에 가보기로 했다.
2018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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