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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비 Apr 07. 2019

저는 비혼주의자입니다

이 글을 꼰대들에게 바칩니다

비혼주의자라는 걸 밝힐 때면 꼭 듣는 말이 있다.


“아직 네가 어려서 그래.”

“나도 네 나이 때는 말이야.”

“나중에도 그런 말 하나 두고 보자.”


자, 가슴에 손을 얹고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아래 문장을 소리 내서 따라 하세요.


“나는 꼰대다.”




비혼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사람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이 여기에 그것들을 일일이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비혼을 결심한 이유가 뭐든 간에 그 사람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아직 네가 어려서 그래.”

당신은 얼마나 오래 사셨는지요.


이 말에서 두 가지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나이가 어린 사람은 미성숙하다고 보는 것, 두 번째로 생애주기에 따라 같은 경험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어림의 기준은 무엇인가. 성숙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우리는 ‘나’를 기준으로 상대적인 비교를 할 뿐이다.


나는 과거보다 지금 더 성숙해졌다. 그러나 상대가 나보다 어리다고 해서 나보다 미성숙하다고 볼 수는 없다. 나이의 고하에 따라 인격의 성숙도가 일정한 비율로 정비례하는 게 아닐뿐더러 성숙도는 정확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적든 많든 case by case, 사람 by 사람이다. 그 사람 자체가 아닌 나이의 고하에 따라 상대를 판단하고 대하는 것은 무례다.


두 번째 맥락은 다음에서 살펴보겠다.



“나도 네 나이 때는 말이야.”

당신과 나는 같지 않습니다.


나와 상대를 동일시해서 일어나는 오류다. 생애주기에 따라 같은 경험을 겪고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는 판단에 상대의 미래를 나의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대가 다르고 사회는 변하고 사람은 다양하다.


나는 내 삶에서 느끼는 불편함, 불평등함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웠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가부장적인 관습과 제도, 사회를 비판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사회를 요구한다. 비혼 역시 이러한 자기주장이다.


의견을 더욱 널리 개진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글을 쓰고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오프라인에서는 포럼을 주최하거나 참여하고,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한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한다. 필요하다면 캠페인이나 단체에 기부를 하기도 한다.


당신이 제 나이 때 정말 이랬나요?

장황하게 내 삶과 가치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과 나는 엄연히 다른 사람입니다. 당신과 나를 동일시하지 마세요.



“나중에도 그런 말 하나 두고 보자.”

그럼 나중에 가서 말하세요.


지금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왜 당연히 바뀔 거라는 뉘앙스로 오지 않은 미래를 논해야 하는가. “결혼 안 하겠다던 사람이 제일 먼저 하더라.”는 식의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나중에 바뀔 수도 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가치관이 변하고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장담할 수 없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유독 비혼에 관해서만 물고 늘어지며 두고 보자는 당신, 꼭 두고 봅시다. 나중에 제 비혼식에 축의금 두둑이 보내주세요. 그동안 들은 오지랖은 돈으로 보상받겠습니다.




나에게 비혼주의자 선언이란 개인의 삶의 선택일 뿐 아니라 일종의 운동(movement)과도 같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성애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결혼 제도를 반대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발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훈수 두고 싶은 당신. 훈수는 제가 아니라 비혼을 선언하게 만든 이 사회에 하시죠. 제도가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다면, 정말 성평등한 사회가 된다면 그땐 저도 결혼을 한 번 생각해볼게요.


아, 물론 생각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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