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숨 쉬어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ctuary Sep 19. 2023

당신을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나와 그와의 주파수를 찾아라

"아무도 나를 화나게 할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이 한 줄 문장에 한동안 깊이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주변의 상황에 영향받거나 지배받지 않고 나의 페이스(pace)에 집중하고 싶었다. 거꾸로 말하면 당시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대응하느라 엄청난 양의 감정을 소비하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마도 매일매일 내 안의 분노를 감당하느라 쩔쩔매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중심,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으려면 자신의 주파수를 먼저 제대로 찾아야 한다.


요가지도자과정 커리큘럼 중 요가 철학 <바가바드 기타> 강독 시간에 강사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아날로그가 사라진 디지털 시대에 '주파수'란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FM/AM 라디오의 주파수를 잘 맞추어야 또렷한 음성으로 방송을 잘 들을 수 있다.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치직거리는 잡음 때문에 소리를 정확하게 알아듣기가 힘들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이론 수업 시간에 둥글게 모여 앉아 각자의 소감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내가 주파수에 대해 더 설명해주시라고 질문을 했더니 강사님이 간단한 행위 하나를 다같이 해보게 하셨다.



1. 허리를 펴고 호흡을 고른 뒤, 내 오른쪽 옆사람과 마주보고 상대방의 눈동자를 한동안 지그시 바라본다
  (약 3분)

2.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3. 다시 아까 그 옆사람의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다음 세 가지 문장을 말한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그런데 당신을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삶을 존중합니다.


4. 나와 서로 눈을 마주 바라본 옆사람도 내가 그에게 한 것처럼 나에게 똑같이 말한다.



처음엔 서로 쑥쓰러워서 키킥대거나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해 눈길을 여기저기 피하기도 하고..

그 3분이 너무도 길게 느껴져서 유지하느라 등줄기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또 속으로는 '아, 내가 지금 왜 이걸 하고 있지? 별 걸 다 시키네. 하기 싫다...'

이렇게 불평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난처럼 시작했던 이 작은 행위가 일으키는 파동이 있었다.


아!

내가 내 옆 사람에게 가졌던 무의식 속 나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었구나!

그걸 떨쳐내야만 이 사람과 내가 제대로 주파수를 맞춰 참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날 수가 있겠구나.


당시 내 옆자리 사람은 나보다 한참 어린 젊은 여성이었고 요가 수련도 나보다 훨씬 많이 해서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고 있던 친구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 친구가 좀 차가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그걸 평소에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 의식을 하는 와중에 내가 그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내가 짐작하고 만들어낸 이미지의 틀 안에서 바라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알아차림(awareness)'의 경험을 조금씩 더 자주, 많이 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오겠지. 나아가 언젠가는 나 자신의 약점마저도 내가 순순히 받아들일 날이 올 수 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대체 '이완된 긴장'을 어떻게 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