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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Oct 25. 2024

#034(D-67)

합격, 한 시기의 마무리

나는 기질과 성격이 아이와 너무 달라서 키우면서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지금까지 아이를 가르친 선생님들은 공통적으로 아이가 '불'이라고 표현한다. 처음 예술학교를 추천했던 피아노 선생님은 아이 이름 앞에 성 대신 '흥'을 넣어서 부르곤 했다. 아이를 "흥00야!" 부르길래 그게 무슨 말이냐고 여쭤봤더니, 


"어머니, 00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흥과 끼가 넘치는 아이에요. 피아노도 잘 치지만 지금 전공하기엔 좀 늦었구요. 제가 몇 년 지켜보니까 그림그리는 걸 좋아하고 잘 그리네요. 미술 전공으로 한반 예술학교에 도전해보세요" 이렇게 시작한 게 예술중학교 입학이었다. 


이번 주에 이틀 간 실기시험을 치른 예술고등학교의 합격자 발표가 오늘 오후 4시라 아이는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일찍 왔다. 어쩔 줄을 몰라 집안을 왔다갔다하길래 잠시 밖에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고 했더니 아이는 나가기 싫다고 불안하다고, 그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넷플릭스로 보겠다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하한선 정도는 아닌듯하니 무난히 합격을 하겠지 라고 믿으면서도 사람의 일은 또 모르니 나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하루 종일 집안일을 이것저것 찾아서 하고 아예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몸이 지치고 힘들어야 피곤해서 생각이 단순해진다. 채화 시험 본 후 미처 정리 못한 파렛트 두 개도 꺼내서 닦아서 정리하고, 화분에 일일이 물 주고 겨울옷도 더 꺼내놓고 서랍도 정리하고, 욕실도 청소하고 냉동실도 정리했더니...비로소 합격자 발표 시간이 몇 분남지 않았다. 엄마, 5분 전이야. 얼른 이리와서 노트북 으로 확인해봐. 근데 땡 시보가 울린 후 들어간 홈페이지에서는 서버가 다운이 되었는지 제 시간에 맞춰 계속 눌러봐도 커서가 멈춰 움직이지를 않는다. 회사 PC로 접속한 동생이 카톡으로 캡처본을 보내왔다. "합격"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 아이의 반응은 나보다 훨씬 격하다. 소리지르고 울고 불고 자기 방으로 뛰어가서 친구들과 통화하면서 긴장을 푼다. 다행히 같은 화실 친구들은 모두 합격했지만 학교 친구 중 친한 친구 한 명이 평소에 잘했기에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는데 불합이라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시험은..진짜 운이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몸과 마음이 풀려서 기분이 멍하다.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받고 답을 하고..지난 1년간 힘들었던 여러 일들이 생각이 난다. 그림 자체보다는 친구관계 때문에 더 힘들어했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새롭게 친구들과 안정된 관계를 맺고있는 듯하다. 


좋아하는 김치찌개 식당을 가고 싶다고 해서 (소원이 소박하기도 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부모님댁 근처 식당에 갔다. 밥을 한 그릇 싹싹 비우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폭 안기고 축하 용돈까지 받고는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자고 있다.


이렇게 평범한 하루를 마칠 수 있고, 무난한 일상이 오늘도 이어지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원하던 결과가 안나왔다면? 생각이 무척 복잡했을 것이다. 그래도...어떻게든 받아들이려고 했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만 아이는 그 타격으로 나보다 더 긴 시간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번 입시를 통해 아이도 한뼘 성장했기를 바란다. 그동안 마음으로 도와주시고 기도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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