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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May 08. 2021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사는 이유가 꼭 거창해야만 할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나는 이 말이 그냥 속담이나 격언같은 경구라고만 생각했었다. 몇 년 전에야 비로소 이 표현이 구약성경의 코헬렛서(전도서)에 나오는 구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에 성경 구절을 찾아서 읽어봤지만 그 의미가 마음 속 깊이 확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 그렇지. 모든 일에는 당연히(!) 가장 적합한 때가 있는 거겠지'. 이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 후 우연히 인터넷 교보에서 이 구절 자체가 제목인 책 한권을 소개하는 글을 보았다. 코헬렛서만 한평생 연구한 영성작가 조앤 치티스터 수녀의 책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For Everything a Season)>라는 책이었다. 성경을 직접 읽어도 잘 와닿지 않았던 것들을 일상 안에서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와 연결된 주옥같은 글 중에 특히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현재의 상태를 낡아서 다 헤진 관계로 판단해서 과감하게 찢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정성들여 바늘과 실로 꿰어서 이어야 할 것인가. 참으로 고민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때가 말할 때이며 어떤 때가 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해야 할 때인가. 그렇다. 그 모든 것에 제 '때'가 있다면, 그 때에 잘 맞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그리고 동시에 매우 조급해하는 존재이기에)  결코 그 때를 알아채지 못하며 그런 이유로 그 '때'보다 한발 앞서가거나 혹은 그 '때'를 놓쳐서 일을 그르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전에 싱가포르에 사는 일본인 친구 이쿠미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십여 년 전 영국에서 만나 지금까지 띄엄띄엄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늘 내 마음 속에 강하고 묵직하게 존재감을 주는 친구이다. 그 친구 부부의 딸과 내 딸이 우연히도 동갑이다. 오랜만에 근황을 전하는 긴 편지에서 이쿠미는 "Everything has a season" 이라고 말하며 지금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딸을 위해 자신이 움직일 때라고 썼다. 내가 마지막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한 건 약 6년 전이었다. 그때 이쿠미는 남편(남편은 싱가포르인이다)의 나라에 와서 정착하며 어린 딸을 돌보느라 자신의 커리어 타이밍을 놓치는 것만 같아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릴 줄 알게 된 듯하다. 이쿠미는 자신이 현재 가진 것들, 예컨대 그것이 시간이든 재능이나 기술이든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다른 이들을 위해 쓰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으며, 우선은 가까운 가족에게 그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도 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의무나 봉사, 희생이 아닌 순전한 '사랑'으로 한다는 점이다.

 

whatever I have, be it time, skills, talents, I try to use them to serve others, starting with my own family :) And that would somehow bear more fruits in my life. When you give something out of love, God rewards you more generously.


지난 2년은 나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평생 어디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있어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매일 일터로 나가지 않는 일상이 힘이 들었다. 2007년 영국에서 귀국한 이후 전투하듯이 육아와 강의와 연구라는 일상에서 살아오다가 갑자기 툭 던져진 '시간'을 어찌할 지 몰라 쩔쩔맸다. 게다가 학교를 그만둔 바로 이듬해 코로나로 인해 온가족이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해야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더욱 허둥댔다. 처음에 나는 내가 집안일을 평생 제대로 해보지 않았기에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그 일을 잘 못하고 보람을 못느끼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가족의 매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메뉴를 짜고 장을 보고 식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의복을 세탁하고 가족과 내가 머무는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갔다. 그런데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면 몸의 고단함보다 마음의 공허함이 더 컸다. 왜이렇지? 이상했다. 운동도 해보고 명상도 해보고 작년 가을에는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도 왔지만 그 허전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두 달 전쯤 용기를 내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 상태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대부분의 글을 쓰자마자 <작가의 서랍>에 마구 처박아두고, 전공이자 관심분야인 (그나마 마음에 드는) 글 몇 개만 발행했다. 그런데 요며칠 꽤 많이 모아둔 서랍글을 하나하나 클릭해서 읽어보다가 내가 힘이 드는 진짜 이유를 발견했다. 그건 어처구니 없게도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한마디로 '손해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내면에는 '내가 지금 나 자신을 위해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나는 그 일을 못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훨씬 더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보다 훨씬 덜 중요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고 그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고 절대로 만족할 수 없다고 계속해서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일의 가치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었나? 내가 꼭 이 시점에 이루어야 할 그 일이 과연 어떤 것인가? 그 일이 지금 이 일보다 정말로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인가?


“사는 이유가 꼭 거창해야만 할까?”

얼마 전에 읽은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The Power of Meaning)>라는 책에서 저자 에밀리 에스파하니는 이렇게 묻는다. 중요한 건 남들이 그럴 듯하게 생각할만한 이유나 세상이 바라는 이유가 아니라 '내가' 사는 이유일 것이다. 이쿠미의 편지를 받고 나의 지난 시간과 현재 시간 - "때"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쿠미처럼 나 역시 나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족이 있고 나 역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청소년기에 막 접어든 딸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남편은 작년부터 해외출장이 전면적으로 막히면서 국내에서 다시 일을 찾기 위해 매일 투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직업인이 아닌 생활인으로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 지금은 그런 때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도움이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담긴 기다림과 전적인 응원이 필요한 때다. 지금은 나의 시간과 경험과 에너지를 가족들을 위해 쓸 시간이고 그 시간 속에서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성장할 그런 시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때"를 온전한 마음으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나에게도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모든 일에는 그 때가 있다.지금이 바로 그 때다.


  


Cover image: photo by jungae park,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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