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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권도 Aug 20. 2019

겸사겸사 캘리포니아 #1

11년만에 지킨 약속, 샌프란시스코

  "나 1년 안에 꼭 다시 돌아올께.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더 많은 얘기도 할 수 있도록 할께"

2008년 8월, 1년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배웅해주던 동료들에게 굳게 약속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뭐, 예, 그렇습니다. 어쨋든 돌아오긴 돌아왔습니다. 1년 앞에 “1”이 하나 더 붙은 11년만이긴 하지만요. 영어 실력은 오히려 더 줄고, 일이랑은 거리가 멀지만 말입니다. 이번엔 생활자로서가 아닌 2주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의 여행자로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이직하기 전 리프레시를 하는 여행자로서, 그렇게 우리 부부는 조금은 춥고, 바쁜(게으른대 맨날 바쁨), 그렇지만 햇살 가득한 캘리포니아 여행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 종종 비도 왔습니다. 5월의 캘리포니아 날씨는 환상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요.


 이번 여행을 위해서 몇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는, 아날로그 여행이라며 필름카메라를 떠나기 세 달 전부터 알아보며 결국엔 Yashica T4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라이언 맥긴리가 사용해서 이미 유명세를 탄 카메라이다보니 중고임에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가격 만큼의 맥긴리력은 증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깜짝 놀란건 생각했던것보다 더 많이 오른 필름 가격이었습니다. 다행히 즐겨 쓰던 필름들이 아직 단종이 되진 않았지만, 차라리 단종되서 고민조차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이 생각은 여기서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현상에 디지털 스캔까지, 이제는 아날로그 = 돈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게 아날로그 갬성이라며 필름 카메라가 신의 한 수 였다며 즐거워하는 내가 참 아날로그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소연 그만)


Golden gate bridge, Yashica T4


painted ladies, from alamo square, Yashica T4


 또 하나는, 요세미티에서의 1박. 그래도 꽤 긴 일정이어서 그냥 당일치기로 보고 오는 것보다는 요세미티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여 맘에 드는 랏지(lodge)를 찾아 예약을 했습니다. 원래는 요세미티의 건너편으로 조금 더 가서 모노 호수(Mono lake)도 보고 싶었지만, 지난 겨울 동안 많은 눈이 내린 여파로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길들이 아직 열리지가 않아 아쉽게도 포기를 했어야 했습니다. 요세미티 밸리에 가까운 캠핑 사이트와 랏지, 캐빈은 이미 예약이 완료됐고, 출발일은 성큼성큼 다가왔기 때문에 몇몇 후보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곳으로 선뜻 예약을 했습니다. 길이 막혀 가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그 이후였습니다. 몇일은, 기적같이 우리가 가기 전에 길이 열릴거라는 뉴스가 업데이트 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그 숙소의 인스타그램 계정도 팔로우하고, 캘리포니아 교통국(Caltrans: https://dot.ca.gov/)도 매일 방문하며 기다렸지만 끝끝내 타이오가 패스(Tioga pass)의 통제는 풀리지 않았고, 그 숙소는 우리끼리의 이야기거리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우리의 대안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크기는 좀 작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호수도 있고, 나무도 있고, 별도 있었습니다. 딱 생각했던 자연 속의 오두막이면서 시설도 적당히 깨끗했습니다. 어두워지는 밤하늘의 별들과 이른 아침 호수까지의 산책은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이었습니다.


evergreen lodge, Yashica T4


luggage cart parking, Yashica T4


산 위의 수영장, Yashica T4


그 (작은) 호수, Yashica T4


산 위에서 바라보는 석양, Canon 6D


그리고 어스름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 Canon 6D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출발하기 (직)전에 준비한게. 류현진 선수의 선발 경기를 예약했습니다. 우리가 5월 1일 오후 3시 20분 도착 예정이었는데, 그날 6시 30분 샌프란시스코 원정 경기의 류현진 선수 선발 등판이 출발 이틀전에 확정이 됐습니다. 류현진 선수가 응원이 많이 필요했나 봅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날 밤에 짐을 다 싸고 자려고 누운 자리에서 사뿐히 티케팅을 했습니다. 검색이고 비교고 없이 다저스 덕아웃 뒤쪽의 1층으로. 그래도 정신은 남아 있었기에 자리는 조금 뒤쪽으로. 우리 둘만 보는게 아니라 누나네 부부도 함께 보는거여서 약간의 자제력을 곁들여 줬습니다. 우린 8회가 종료되고 먼저 자리를 일어나 누나네 집으로 갔습니다. 류현진은 비록 승패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8회까지 1실점 호투를 했고, 우리가 나온 후 9회에 샌프란시스코는 1점을 더해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그 이후로도 류현진 선수는 우리 응원의 힘을 받았는지 역대급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TMI)


이제는 AT&T Park이 아닌, ORACLE Park, Yashica T4


Go Giants, Go Ryu! 응?, Yashica T4


 10시간의 비행, 3시간의 입국심사, 그리고 3시간의 류현진 응원, 우리는 누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져서 다음날 아침을 개운하게 맞이했습니다. 17시간의 시차는 잠시 태평양에 맡겨놨습니다. 돌아갈 때 찾아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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