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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권도 Oct 24. 2019

겸사겸사 캘리포니아 #2

파리의 심판 와이너리들을 방문하다.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에 누나와 매형이 함께 근처 와이너리에서 열리는 프라이빗 파티에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제안이라고 썼지만, 프라이빗 파티인 만큼 아주 제한적인 인원만 갈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준 것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알못스러운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산호세에 와이너리가 있어? 캘리포니아 와인은 나파, 소노마가 유명한거 아니야? 산호세 지역에 있는 아무리 좋은 와이너라라고 해봤자 뭐, 그냥 동네 와이너리이겠지. 가뜩이나 할 일들이 많아서 일정이 모자란데 하루의 밝은 시간을 모두 할애하는건 무리야. 거절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무지의 대화와는 달리 성격이란 놈은 참 우유부단해서 차마 No! 라는 말을 하지는 못한채 어물쩡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일정을 정하지 못하고 전날에서야 누나네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여전히 아주 많은 기대는 하지 않은 마음가짐이긴 하지만요. 


 다음날 아침, 누나가 살고 있는 산타클라라를 출발하여 산호세의 서쪽, 쿠퍼티노를 조금 지나 나즈막한 산을 올라갔습니다. (물론 차가 올라갔습니다.) 낮은 산이라고는 하지만, 다 올라가서 보니 그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 주변으로 전혀 막힘 없이 산호세 주변이 모두 내려다보이고, 하늘도 너무 맑아서 갑자기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흔히 얘기하는 Bay effect 때문에 기온도 낮고, 바람도 세고, 게다가 변덕스러운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에어리어의 기후와는 다르게 훨씬 포근하고 따뜻했습니다. 종종 바람이 불긴 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세찬 바람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Ridge vineyard 에서 바라본 쿠퍼티노. 자세히 보면 중앙에 동그란 모양의 Apple park도 보인다. iphone 7+


 오늘 이 곳, Ridge Winery에서는 Assemblage tasting이라는 이벤트가 열립니다. 여러 비율로 블렌딩한 와인을 병입하기 전에 멤버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모두가 들떠 있는 모습입니다. 맛있는 와인도 마시고, 좋은 날씨도 즐기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스몰 톡도 나눌 수 있으니 굳이 Assemblage tasting이라는 타이틀은 붙지 않아도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체크인을 마치면 그 다음부터는 자유롭게 마시고, 먹고, 얘기하고. Yashica T4


영어 때문인지 대단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먹고, 마시고, 노는 이야기들. Yashica T4


 그리고 우리 -와인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엄청 좋아하는- 도 그 무리에 섞여 봅니다. 갈까 말까 고민을 했던 사람치고는 들떠 있는 사람들 못지 않게 흥분된 상태입니다. 술을 비교적 잘 마시는 나도, 술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슈기도 잔을 손에서 한 시도 떼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열심히 와인을 마시러 다닙니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에 소개됐던 파리의 심판에서 Stag's leap Wine Cellars와 함께 프랑스 와인들을 제치고 상위권을 차지했던 Monte Bello를 생산하는 와이너리라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더더욱 활발하게 시음 전선에 참전했습니다. 

 

Ridge California, Est. 1066. Yashica T4


 Assemblage tasting 이라는 행사 이름이 붙어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빈티지의 와인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생산되었던 와인들에서부터 1981년 빈티지까지 다양하게 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빈티지는 확실히 인기도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래된 빈티지의 쿰쿰한 맛보다는 적당히 숙성된 와인의 신선한 맛이 더 좋았습니다. 하지만 올드 빈티지 와인은 쉽게 접하기 힘든 만큼 이 곳에서도 경쟁이 치열합니다. 어중간하게 머뭇거렸다가는 국물도 없게 되니, 혹시나 이 글을 먼저 읽고 이 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랄께요. 잔부터 슥, OK?


날씨가 좋아서 여기가 명당이겠거니 했지만 그거슨 착각. 술과 음식 공급이 잘되는 곳이 최고의 입지. Yashica T4


좋은 날씨, 좋은 풍경, 좋은 와인(이라 믿으니 더 좋은), 좋은 시간에 기분 좋아진 슈기. Yashica T4




 

 다음 날 우린, 또 다른 와이너리를 찾았습니다.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 부부와 한국에서 늦게 합류한 또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우리가 와이너리에 대해 아주 얕게 알고 있던 바로 그 곳, 나파의 와이너리를 찾아 갔습니다. 다섯명이 차 한대에 옹기종기 사이좋게 붙어서.


 먼저 찾아간 Opus One Winery는 아쉽게도 방문전 필수 예약이어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린 당황하지 않고 근처의 다른 와이너리를 물색했습니다. 정보화시대이고, 우린 다섯명이나 있으니까. 그렇게 찾아간 곳이 Stag's Leap Winery 입니다. 우연인 척 찾아간 것 치고는,  파리의 심판 당시 정말로 모든 프랑스 와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와인을 생산하는 바로 그 곳이어서 엄청 기대가 됩니다. 사전 조사는 했지만, 확정은 짓지 않았기에 우연이 맞습니다. ;)

 

눈에 들어오는 풍경 하나하나가 명화의 한 장면 같은 곳. Yashica T4


 원래 이 곳 Stag's Leap Winery도 주말에는 예약이 필수라고 합니다. 정말 운이 좋게도, 혹은 (융통성있는) 스탭의 기지로 우리는 기분좋게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방문한 O Winery와는 참 비교가 됩니다. (뒤끝 많음 주의) 확실히 사람의 기분에도 흐름이 있어서인지, 그 이후로 모든게 다 좋아보입니다. 입장을 안내해 준 스탭, 테이스팅을 진행해 준 스탭 모두 시종일관 밝고 친근하게 우리를 대해줬습니다. 와인도 모두 맛있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의 와이너리 풍경은 명화 속 한 장면, 아니 우리가 명화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습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고즈넉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 Yashica T4


 한가지 확실한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간이지만, 그 사람의 시간이 행복하고 아름다워지도록 내가 관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행동이 아닌 단지 친절하고 상냥한 말 한마디만으로요. 다른 사람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뺏지 않는 사람이 되길 다시 한 번 다짐을 해 봅니다. 


 그리고, 비싼 와인은 확실히 맛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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