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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Feb 19. 2021

6 브레이크 없는 나홀로 여행의 속도

자의든, 타의든 물 흐르듯 흘러가는 상황

혼자 여행하면 평소보다 상황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평소에는 우유부단해서 결정 내리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지만 여행지에선 의견을 구하고 의지할 일행이 없어서 그런지 없던 결단력이 생긴다. 게다가 언제 또 올지 모르니 ‘하지 않고’ 후회할 바엔 ‘하고 나서’ 후회하자 쪽에 강하게 끌린다. 결정에 대해 비난을 받을 일도 없고 책임도, 후회도 1인분만 하면 되니 선택에 따른 부담도 적다. 종종 현지 문화 덕분에 남들보다 한걸음 앞서게 된다.




여행의 피로, 참지 않아도 돼

일행이 있을 땐 피곤하면 이동 중에 잠시 눈을 붙이거나 커피,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가며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혼자라면? 휴식을 필요로 하는 내 몸의 신호에 즉각 대응할 수 있다. 바로 숙소로 직행해 한숨 자고 나와도 된다. 굳이 정신 승리할 필요가 없다. 양손이 모자랄 정도로 거하게 쇼핑했다면 숙소에 들러 짐을 두고 나와도 된다. 이때, 식사나 당충전할 간식을 포장해와서 숙소에서 두 다리 뻗고 먹으면 더 좋다. 이렇게 숙소로 왕복하는 시간과 머무는 시간을 합치면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시간 아깝다’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보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딱 좋다. 조금 부드럽게 말한다면 ‘카페에 잠깐 앉았다 가자’고 할 수도 있고. 시간이 아깝고 하나라도 더 보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쉬지 않으면 피로가 덜 풀린 느낌이다. 여행지에서의 감흥도 최소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일어나는 거니까. 지치고 피곤하다면 아무리 좋은 풍경을 봐도 감정들이 요동치지 않는다. 혼자라서 나의 본능에 충실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여행에 집중할 수 있달까. 



쇼핑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네

한국이라면 ‘살까, 말까’하며 30분은 족히 고민했겠지만 여행지에서는 고민 없이 GO! 여기를 언제 다시 모를 일이고 (설마 했던 이 가정이 코로나19 탓에 현실이 되어 버렸다) 사지 않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다. 누군가 그랬다. ‘살까, 말까’ 고민될 때 사면, 나중에 물건이라도 남지만 사지 않으면 후회만 남는다고. 그래서 일행이 있다면 기본적인 필터링-‘그거 사서 몇 번이나 쓸 것 같아?’ ‘캐리어에 어떻게 넣어 갈 건데?’ 등-을 거치면서 내려놓게 되는 물건도 바로 구입한다. 좀 더 고민하고 이따가 또는 여행 마지막 날에 다시 와서 사겠다는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단 걸 경험한 탓도 있다. 갔던 곳을 또 갈 시간에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하나라도 더 가는 게 효율적이고 (물론, 그곳이 다시 한번 더 갈 만큼 의미 있는 곳이라면 예외), 나중에 그곳을 또 들르게 되면서 동선이 꼬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행 내내 물건을 ‘사는 것과 사지 않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 계산하느라 여행지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나름의 이유로 여행지에선 평소와 달리 지름신의 노예가 된다. 그래서 지금 내 서재엔 방콕에서 구입한 나무 개구리 인형부터 바르셀로나에서 구입한 식기까지, 쓸모없는 것과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끼워 넣기에 제격인 1인

홍콩에는 합석 문화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카페나 레스토랑보다는 조금 오래된 가게나 노점에서는 일반적이다. 원형 테이블에 나 혼자 국수를 먹는데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내 앞에 앉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합석 당해(?) 혼자 안절부절못하는 나와 달리 정작 합석한 사람은 여유롭게 신문을 펼치며 음식을 기다린다. 한국이었다면 겸연쩍게 인사를 나누거나 서로 의식한 티가 팍팍 났을 상황. 그런데 그 반대의 입장, 즉 내가 이미 사람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합석하는 상황이 되니 민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갑다. 센트럴의 유명한 국숫집이었다. 웨이팅 시간은 기본 20~30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맛집이라 안 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생각보다 줄은 빠르게 줄어들어 내 앞에 3~4팀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식당 직원이 첫 번째 팀부터 일행이 몇 명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들 2명에서 4명 사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직원이 내 앞에 섰다. 나는 검지를 들어 내 몸을 한 번 가리킨 다음 그를 향해 ‘One’이라고 답했다. Okay! 그는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그렇게 앞 팀을 추월해 세 명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어색하기만 할 줄 알았던 합석의 덕을 볼 줄이야. 그때 그 사람의 흡족한 표정이 이제야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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