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비안 May 24. 2020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딴짓, 메모

에세이 『아무튼, 메모』를 읽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멍때리기 선수였다. 밥을 먹다가, 대화를 하다가, 수업을 듣다가 자주 딴생각에 빠졌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며 핀잔을 주곤 했다. 보통은 “아무 생각 안 해.”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그건 절반만 사실이었다. 시선이 닿는 가장 먼 곳을 응시하며 무아지경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를 둘러싼 온갖 사건들을 곱씹으며 되새김질하곤 했다. 딴생각에 빠질 때 나의 머릿속은 상상, 후회, 체념들로 얼룩져있었다.


혼자서 자주 공상에 빠져있던 어린시절의 나는 점차 그 생각들을 종이에 옮겨적기 시작했다. 머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생각들이 마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기록 마니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학교 제출용 일기장, 나만 보는 일기장, 다이어리, 아무거나 적는 아무노트 등 여러 권의 노트를 끼고 살았다.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없는 나만의 보물들이었다.


기록은 습관으로 굳어져 어른이 된 지금도 나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스케줄러와 일기장이 들어있는 트래블러스 노트, 아이디어 노트와 필사 노트는 외출시마다 꼭 챙기는 필수품이다. 노트 사이사이에 끼워져있는 메모지와 포스트잇도 빼놓을 수 없다. 아, 핸드폰 메모 어플도!


그런 나였으니 『아무튼, 메모』를 받아들고 환희의 기쁨을 내지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정혜윤 작가의 책이 아닌가! 일찍이 그는 『침대와 책』, 『뜻밖의 좋은 일』, 『마술 라디오』 등 다양한 저작을 통해 독서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온 바 있다. 나 또한 그의 책을 읽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고 심지어 그가 가진 ‘세상이 좋은 쪽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조금은 믿게 되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의 독서 생활의 지침이 되어준 그가 메모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아무튼, 메모』에서 저자는 메모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는 단순히 자기 자신을 위해 메모를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메모를 바탕으로 삶을 꾸려가야한다고 이야기한다.


혼자서 메모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는 사회적 존재다.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메모할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메모장 안에서 우리는 더 용감해져도 된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꿈꿔도 좋다.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살지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따라 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 안에 괜찮은 것이 없다면 외부 세계에서 모셔 오면 된다. (67쪽)


책을 절반쯤 읽고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가지고 있는 다이어리와 노트, 메모장들을 쓰윽 훑어보기 시작했다. 하루의 할 일들이 가득 적힌 스케줄표, 감사 일기, 순간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 일상 속 관찰들 그리고 책 속에서 건져낸 좋은 문장들. 순간 그것들은 산산조각난 천쪼가리들처럼 보였다. 머릿속에 다 담아둘 수 없어 꺼낸 것들이 내 눈 앞에 조각난 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기워야겠다. 이것들로 뭐라도 만들어야겠다.’ 나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던 나의 메모들을 삶을 위한 예열 발판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내가 『아무튼, 메모』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이다.


나는 가장 좋은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고 믿는다. 세계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혹은 “결국 내 인생은 잘 풀릴 거야”라는 믿음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런 믿음은 없다. 세상은 아수라장이다. 나는 늘 실수하고 길을 잃고 발전은 더디다. 나는 나 자신의 ‘후짐’ 때문에 수시로 낙담한다. 그래서 더욱더 나 자신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고 세상이 더 좋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 (43쪽)


그런가 하면 『아무튼, 메모』는 메모를 테마로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발판 중 하나로 독서와 메모를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두 가지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테지만, 진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비할 바 있으랴. ‘진짜’는 삶에 있다.


나와 같은 딴짓의 귀재들에게, 기록 마니아들에게, 생각이 너무 많은 이들에게, 독서가들에게, 세상이 나아져야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당신에게 『아무튼, 메모』를 함께 읽어보자고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함께 나아가자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우리가 되자고,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를 만들어보자고!



*반디앤루니스 펜벗 10기 활동중 작성된 원고입니다.

원문 :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blog/blogMain.do?iframe=viewPost.do&artNo=46098026



글. 비비안

매거진의 이전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그리고 예술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