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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May 31. 2020

나를 담은 조각들 : 세 권의 책

제 인생 책을 소개합니다

책, 특히 에세이를 읽을 때 유독 저자와 내가 닮았다고 느껴지는 책이 있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것이다. 그러나 하필 그 시기에 그 책을 집어 들었다는 것, 그 속에서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것, 그리하여 어떤 페이지에 길게 머무르게 되었다는 것은 조금 특별한 일이 아닐까.


사실 나는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책은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못된 심보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혼자 꽁꽁 숨겨두는 것보다 함께 나누고 읽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추천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적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만의 책’으로 선정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읽었던 책들이 즐비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만의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일이 드물게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 책과 내가 참 많이 닮았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그려달라는 뜻이었다.


지인들에게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고 책만 쓱 내밀어도 그들은 어김없이 ‘이 책을 쓴 사람과 네가 참 많이 닮았다’ ‘네 이야기 같다’ ‘네가 쓴 거 아니야?’와 같은 후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그럴 때면 부끄럽기도 하고 몽글거리기도 하는 마음이 차올라 하루 종일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 책을 다시 펼쳐 들고 위안을 삼았던 밤도 여럿이다. 오늘은 그러한 ‘나만의 책’ 리스트에서 몇 권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오지은, 『익숙한 새벽 세시』



  

“이쯤에서 인정하기 싫었던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픔을 붙잡고 있는 행위는 어떤 종류의 자위일지도 모른다. 마치 바늘로 자신의 손을 찌르며 아픔에 도취되는 것처럼. 어쩌면 그 사실에 가장 집착하고 있던 것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가장 싫어하던 것에 매달려 있으면서 떨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를 이루고 있는 기둥으로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119p)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이 2015년 펼쳐낸 에세이다. 오래전 끝도 없는 우울과 괴로움의 나락에 빠져 있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이 바로 오지은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였다. 하루 종일 이 곡만 들었던 날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어두운 구석에서 몸부림치던 나에게 『익숙한 새벽 세시』의 출간 소식이 들려왔고 나는 이 책 속에서 다시 나의 어떤 면모를 발견했다. 스스로를 향해 세운 칼날, 끊임없는 자기 의심 같은 것들 말이다. 더불어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쓰여진 저자의 글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2. 문보영,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한때 누군가 나에게 사랑해, 라고 말했다. 사랑해, 라는 말은 어떤 구조로 생겨먹은 걸까?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어버버거린다. “나… 나를…? 나는 쓰레기예요….” 쓰레기라고 자랑하는 게 아니고, 쓰레기라고 겸손 떠는 것도 아니다. 쓰레기라는 건 그저, ‘내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면 어쩌죠?’ 하는 불안이다.


왜 사람은 누군가를 안는 구조로 생겨서 타인을 갈망하게 되는 걸까?” (24p)


2019년은 시인 문보영의 해였다. 첫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에 이어 두 번째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무려 두 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두 권 모두 아끼는 책이지만, 역시 나는 치열하고 고통스러웠던 시인의 20대 초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이 나와 더 가까이에 있다고 느낀다.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고 사랑을 갈구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로부터 몇 걸음 지나왔지만 나의 일부는 여전히 그 시절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을 읽고 그 시절 나의 모습이 수시로 떠올랐다.


3.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나 자신을 혐오하는 것. 폭음의 밤을 보낸 대가로 움푹 팬 늑대 같은 내 얼굴을 증오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나는 폭음이라는 단어를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되뇌면서 거울 속의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한순간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정말이지 대단한 폭음의 밤이었다.” (65p)


아, 사강! 나는 사강 소설 속 주인공들의 자기 파괴적인 면모가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소설을 읽을 때면 그들이 나를 대신해서 나를 해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강 소설에서 주인공의 자기혐오와 자기 파괴는 결국 방종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애수로 승화된다. 그 장면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가장 좋아한다. 최근 김남주 번역가의 매끄러운 번역으로 다시 번역 출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 *


세 권의 책을 소개했을 뿐인데 나를 너무 많이 드러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또한 물론 나의 착각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약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니까. 아주 떨리는 마음으로 세 권의 훌륭한 책을 빌어, 바로 여기, 나의 조각을 털어놓는다.



* 반디앤루니스 펜벗 10기 활동중 작성된 원고입니다.

원문 :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blog/blogMain.do?iframe=viewPost.do&artNo=4609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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