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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드나인 Mar 06. 2024

발리의 액티비티 5- 바투르 화산섬 일출 지프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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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리의 액티비티 5- 바투르 화산섬 일출 지프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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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여행과 관련하여, 혹은 여행과 관련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물어본다면 꼭 들어가는 것 중 하나가 걷거나 달리는 것이다. 특히 오르막길이라면 싫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건강을 위해 일상을 관리하는 차원의 운동은 극히 싫어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스릴을 즐기는 액티비티는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놀이기구, 수영, 스노우보드 등등.


발리에서 하고 싶은 액티비티들은 다 예약한 것 같았는데 한 가지가 마지막으로 눈에 띄었다. 발리는 서핑이나 스노클링을 즐기기 좋은 해변도 많지만 아궁산이나 바투르산 같은 휴화산들도 꽤 많다. 당연히 산이 있으면 오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트레킹 액티비티도 발달했다. 나는 산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도 않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저기에 내 발로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런데 바투르 산을 지프(Jeep)로 올라가는 투어가 있다지 뭔가? 난 운전과 스피드를 사랑하고 차 중에서는 특히 지프 같은 거칠고 큰 차를 좋아한다. 현재는 현실과의 타협으로 작은 승용차를 몰고 있지만 몇 년 안에는 지프를 타고 산의 오르막길과 빗길을 달리기를 바라고 있다. 바투르산도 아궁산처럼 현재는 화산 활동을 멈춘 휴화산인데 아궁산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내가 신청한 투어는 1700m를 조금 넘는다고 들었던 바투르산을 새벽에 올라가 일출을 보는 것이었는데, 내가 직접 걷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았지만 게다가 지프로 오프로드를 경험하며 올라간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아침잠이 병적으로 많은 나이기에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걸 감수할만큼 매력적인 투어였다. 


전날 뚤람벤에 가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온 터라 체력이 걱정됐지만 최대한 세심하게 나의 체력을 신경쓰며 바투르 산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바투르 산에 올라가는 방법에는 크게 3가지 정도가 있다. 트레킹으로 올라가는 방법, 중간 정도까지는 지프를 타고 중간 정도를 트레킹하는 방법, 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지프와 함께하는 투어. 계절에 따라 시간이 조금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보통 지프 투어의 경우에는 숙소에서 바투르 산 밑에까지 일반 승용차로 이동 후, 지프로 갈아타고 일출을 보는 산 위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바투르 산은 지도 상 동쪽에 위치해 있어서 숙소가 우붓이라면 보통 3시 30-45분쯤 출발, 우리처럼 스미냑 쪽이면 3시 정도에 출발하게 된다. 2시간 반 정도 자고 일어나서 새벽 3시에 체크아웃 후 우리를 픽업하러 올 기사를 기다리는데 감감무소식이어서 왓츠앱(What's app)으로 어디냐며 초조한 마음으로 재촉했다. 그랩 기사는 운전석에서 꽉 막힌 앞 차선의 사진을 찍어 보내며 자신의 고군분투를 애써 어필했다. 어차피 일찍 일어난 김에 30분, 1시간 더 기다리는 거야 큰 일도 아니었지만 떠오르는 해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40분이 넘게 기다린 끝에 택시 기사가 왔고 (원래도 친절한 사람 같긴 했으나) 혹시나 우리가 일출을 못 보게 될까봐 심기가 불편해하는 걸 알고는 정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로 우리를 대했다. 계속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 그리고 그는 미치듯이 페달을 밟았다. 속력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빠르게 달리는 것은 괜찮은데 발리에 가 보면 알겠지만 페달을 밟을 만한 길이 많지 않다. 특히 산길에는 말이다. 한국 강원도 산길처럼 계속 꼬불꼬불한데다가 도로가 매끄럽게 포장되어 있지 않아서 조금만 속력을 내도 승차감이 최악이 되버린다. 흡사 마차를 타고 내달리는 것처럼 차가 내달리는 바닥의 돌들이 다 느껴진달까. 스릴을 즐기는 나지만 정말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엄청난 굴곡의 도로를 속도 변화 없이 내달리는 그 어린 운전기사의 다급함을 어두운 차 안에서 느끼며 3시간을 내달렸다. 중간 중간에 운전기사의 친구로 느껴지는 사람이 기사에게 몇 번 전화가 왔다. 인도네시아 말이라고는 1도 모르지만 왠지 이런 내용인 것 같았다. 


"야, 너 어디야? 5시까지는 여기로 오기로 했잖아. 지금 다른 팀은 다 올라갔어" "나도 최선을 다해 가고 있다구, 스미냑에서 거기까지 얼마나 먼지 알아? 최대한 빨리 갈게" 하는 내용을 주고 받는 것 같았다. 아마 맞을 것이라고 99% 확신한다. 딱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만큼만 앞이 보이는 암흑의 산길을 달리는 경험은 마치 탐험을 떠나는 것처럼 나를 설레게 했다. 


구글 맵을 켜서 실시간 위치를 확인해보니, 거의 바투르 산 초입까지 온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 기사가 황량한 1차선 도로 한 가운데 차를 세우고 다 왔다고 지프로 갈아타라고 했다. 발리의 바투르 산을 올라가는 지프는 창문이 없는 뚫린 형태이다. 운전석, 조수석 뒤에 좌석 2개(접으면 짐칸이 되는 형태)가 있는 구조였는데 딱히 밟고 올라갈 계단이 없어서 바퀴 등을 밟고 힘겹게 올라갔다. 밋첨이는 안전지향주의라 내가 혹시나 차 밖으로 튕겨나갈까 나를 꼭 잡고 앉았는데 나는 '얼마나 험한 산길일까? 얼마나 덜컹거릴까...!'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차분히 내 앞에 펼쳐질 광경을 기대하는 중이었다. 대충 편한 자세를 취하고 난 뒤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꺾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수백개의 별이 떠 있는 하늘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 평소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도 보이는 똑같은 별들이었지만 유난히 더 크고 밝았다. 우리가 머물던 스미냑 숙소에서도 별이 참 많이 보였었는데 산 위로 올라가서 그런가 별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었다. 일출을 보러 온 우리기에, 얼마 안 있으면 이 별들도 사라진다는 생각에 아예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내내 고개를 90도로 꺾어 별들이 펼쳐진 장면을 눈에 담았다. 뚫린 차 안으로 차갑게 들어오는 바람과 미친듯이 덜컹거리는 지프와 눈곱도 못 뗀 우리가 별을 보고 있는 이 순간은 발리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 중 하나로 남아있다. 


사실 난 보통 여행을 하면서 날씨가 좋든 안 좋든 그 나름대로의 운치와 그 날씨에서만 얻을 수 있는 고유의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날씨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그 장소가 만들어내는 아우라를 최대치로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몇 군데 있고, 그 중에 한 군데가 바투르 산이다. 아무것도 가리는 게 없는 하늘에서 깨끗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출 전에 쏟아져내릴 듯한 별들을 볼 수 있기에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황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지프에서 내려 해가 뜨는 방향으로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있으면 각자의 가이드(혹은 운전기사)가 산 정상에 딱 한군데 있는 간이 식당? 매점? 같은 곳에서 아침식사를 바구니에 배달해준다. 아침식사는 다 통일인데 뜨거운 커피나 차, 삶은 달걀, 초코 과자, 바나나를 으깨서 잼 처럼 만들어 식빵에 바른 샌드위치다. 사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식사고 새벽이어서 많이 들어가지도 않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와 달걀, 바나나 샌드위치는 바투르 산이어서 그런지 너그럽게 평가하게 된다. 


해가 다 뜨고 나면 자기가 타고 온 지프 위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산 위가 추울지 몰라 반팔과 나시밖에 안 챙겨온 나는 급하게 남편의 아재 경량 패딩을 입은 터라, 착장은 맘에 안들지만 최대한 발랄한 척을 하며 내 생에 몇 번 안되는 새벽 시간을 사진으로 남겨본다. 남편은 SNS도 거의 안 하고 카톡의 프로필 사진도 안 바꾸는데 은근 사진 욕심은 있어서 자꾸만 나한테 사진을 다시 찍어달라고 한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맘에 드는 사진을 몇 개 건졌는지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번진 것을 나는 포착했다.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지도 않고, 맘에 안들어도 뻔뻔하게 포즈를 취하는 것에 취약한 우리는 수십대의 지프들 중에 가장 먼저 바투르 산을 내려간다. 


바투르 산을 내려가면 화산 폭발 때 만들어진 화강암으로 둘러쌓인 '블랙 라바'로 데려가주는 게 대부분 투어에 포함되어 있다. 물론 생략하고 바로 끝낼 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 난 이 코스를 꼭 가기를 강추한다. 현무암이야 제주도에서도 많이 봤는데 뭘 또 돌을 보러 이동하나 하는 생각에 이 코스를 패스할 수도 있지만, 까만돌음 봤어도 까만돌들이 지역 전체를 덮고 있는 건 아마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곳곳에는 소원을 빌기 위한 목적으로 혹은 카메라로 사진을 연출하기 위해 누군가가 쌓아놓은 돌탑들이 보인다. 


항상 이런 곳을 오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이 자연 지형이 한국에 있었으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들어오기 어렵게 돌들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고 지금 여기처럼 그대로 두었을까? 내 편견일지 모르겠으나 아마 차가 다니기 좋게 길을 정비하고 포토존들을 만들고 화강암으로 만든 각종 기념품샵들이 입구에 줄지어 서 있지 않을까? 아니면 화강암 아이스크림이라고 이름 붙인 검정색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를 고집하기는 현대 사회에서 어려울 수 있다. 그 자연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과 신념도 다르다. 그러나 발리의 이 산 위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구멍 난 검은 돌들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이해관계를 떠나서 조금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어떤 자연이 주는 고유의 느낌은 지켜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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