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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Aug 04. 2022

이 세상에 나 하나쯤은

없어도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눈이 부시듯 반짝이는 햇살과

살며시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내게 속삭였다.


"이 세상에 너 하나쯤은 없어도 될 거야."





이른 아침,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긴 창 밖으로 초록 초록하고 예쁜 잔디가 보이는 카페 이층에 앉아있다.  창 밖의 사람들은 각자 바쁜 일에 몰두해 있고 나는 창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문득 다시 이러한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나 하나쯤은 없어도 될까. 그럼 반짝이는 햇살이 더 반짝일 수 있고 초록초록 빛나는 잔디가 더 싱그러울 수도 있고 바쁘게 자신의 일을 몰두하는 모두의 마음이 더 평안해질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없어진다면 더 나아질 텐데. 카페 이층에 앉은 내 모습을 지우개로 지워도 흔적 하나 소리하나 나지 않겠지.



나만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큰소리를 내고 온갖 짜증을 내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어떻게든 표현했다. 잠시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나의 존재를 표현하려 발버둥 쳤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렇게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이 모습을 커다란 지우개로 지워버렸으면 좋겠어. 나만 가만히 있으면 모두가 평안할 텐데.



내 이러한 마음에도,

초록 잔디는 여전히 예쁘고 피아노 연주곡은 언제나 아름답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싱그럽다. 모두가 아름다운 그곳에 아름답지 못한  내가 있다. 유독 불행한 내가 있다. 성나고 못난 내가 있다. 다들 너무 평화로워서 그 사이에 있는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 평안한 내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나만 사라져 준다면 그들이 더 평안할까 내가 사라지는 것이 모두에게 평안을 줄까.



잠시 잠깐은 알아줄 테지. 그리고 슬퍼하겠지. 나와 늘 함께하던 그들은 슬퍼하겠지. 잠시 슬퍼하겠지. 아니 오랫동안 슬퍼하겠지. 그리곤 평안할 거야. 일 년 이년이 지난 후에 초록 잔디는 내가 있든 없든 초록초록 싱그러울 테고 내가 없어도 들릴 피아노 연주곡은 언제나처럼 아름답겠지. 그리곤 그들의 삶에도 곧 평화가 올 거야. 마치 내가 그들의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잘 살아갈 테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지낼 거야. 요동치는 감정이 없으니 더 평화로울 거야. 슬픈 감정은 남아있겠지만 자신의 삶이 평화롭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겠지. 그리곤 잘 살아가겠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나만 성난 이 삶이. 이렇게 좋은 일상이 주어졌음에도 불평과 불안이 휩싸이는 내 삶이 나는 너무 싫다.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 아픈 사람들도 이 삶을 살아가길 원하고, 매일 숨길수 없는 고민이 고통이 되어 삶을 갈기갈기 찢겨도 이 삶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데. 나는 평안하고 고요한 삶인데 이 삶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마저 어떻게든 살아가고 싶은 삶인데 나는 평안해도 그만두고 싶은 삶이 되었다.



불행한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금은 너무 평안한데. 왜 앞으로가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 걸까. 대체 왜. 스스로 아프게 만들까.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꿈이 많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희망이 멀어지면 고통이고 슬픔이다. 너무 거대한 꿈이라 쳐다볼 수도 없는 꿈이라면 그러한 꿈을 품은 나는 불행해진다. 아무리 해도 그 꿈에 발초 차 담글 수 없을 땐 할 수 있다는 희망마저 불씨를 꺼트린다.



아이가 물었다.

"엄만 꿈이 뭐예요?"

"글쎄, 벌써 어른이라 이룰 수 있는 꿈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 크면 꿈을 못 꿔요?"



조금 더 성장한 아이가 물었다.

"엄만 버킷리스트가 뭐예요?"

"너네들이랑 같이 어디 어디에 가고.."

"그거 말고, 엄마가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요. 우리 말고요. 엄마 스스로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요."



꿈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러한 꿈을 꾸기엔 늦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곤 생각지도 못했던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듣곤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소소하고 사소한 버킷리스트. 그런데 그 작은 것들마저 멀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그 작은 것들도 품으면 안 됐었나. 희망을 품을수록 넌 될 수 없다는 절망이 되어 돌아온다. 희망을 길게 품기엔 내 안의 열정을 품을 수 있는 기간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얼른 하나씩 해치워야 해.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야.



평화롭던 피아노 연주곡이 멈췄다. 들리지 않았던 에어컨 기계소리. 달그락 거리는 얼음 소리. 책상에 내려놓는 유리잔 소리. 따각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름답던 피아노 연주곡이 멈추니 적막하지만 고요하고 사소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를 치장하고 싶던 수식어들이 있었다. 그 수식어를 위해 꿈을 꾸었는지 모른다. 그 수식어를 위해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남은 인생이 내 이름 앞에 더 아름답고 예쁜 수식어로 불리길 바랬다. 그랬었나 보다. 그렇게 될 거란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가다가 닿을 수 없는 희망이 절망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곤 아이에게 편지를 남겼다.ㅂ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 필요는 없어. 열심히 영어 단어를 외울 필요는 없어.

이것을 해내야 다음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고문은 너를 지치게 할 거야.

열심히 달려서 네가 원하던 꿈에 도착해도 그 안에서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리곤 원망하겠지 뭘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하고 말이야.

그냥 꾸역꾸역 열심히 하는 것은 너를 지치게 할 뿐이야.

열심히만 하는 것은 지금의 아름답고 예쁜 순간을 가릴 뿐이야.


공원에 쏟아지는 예쁜 분수대도,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어디론가 성큼성큼 가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도 그냥 멍하니 지켜봐. 그리곤 이 모든 것을 즐겨. 너에게 값없이 거저 주어진 하루를 눈에 가득 담고 마음에 가득 담아.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쩔 수 없이 풀어야 하는 수학 문제를 어떤 마음으로 풀어야 할지 생각이 들겠지. 나는 어떻게 꿈을 꾸어야 할지.


열심히 놀지도 말고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돼.

더구나 훌륭한 무언가가 될 필요는 없어.

열심히라는 단어로 너를 채찍질하지 않아도 돼.

열심히 보단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네가 더 멋진 거니까.

먼 훗날, 네 삶을 있는 그대로 잘 즐기는 사람이 되면 너는 성공한 삶이야. 매일 그렇지는 않아도 잠시 잠깐의 휴식을 잘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건 성공한 삶이야.


우린 미래에 네 앞의 붙을 수식어를 위해 열심히를 강조하지. 그것이 과연 행복일까. 정작 그 수식어를 달고 넌 행복할까. 그 행복은 내 것이 아닌 네 것인데.

부모는 단정 짓지 그 수식어가 붙으면 행복한 삶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가 정해줄 수는 없어.

스스로 정해야 해.

값없이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감사하게 살아가면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어른이 되어있겠지.

그럼 성공한 삶이야. 굉장히 의미 있는 삶이야.

그러니 지금 현재를 즐겨. 그리곤 감사해.

그게 성공이야.




초록 잔디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괜찮아, 이대로도 좋은 삶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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