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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Aug 08. 2022

불행하지 않아,

I'm a turtle who enjoys life.

삶에 대한 열정을 꼭 붙들어 보기로 했다.


불길한 마음은 희망이라는 틈조차 비치지 않는 컴컴한 곳으로 나를 매일 끌고 갔다. 이곳이 제일 안전해. 널 지켜줄 거야. 나만큼 네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매일 같이 속삭였다. 흘리는 눈물이 깊어질수록 나는 그곳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섬세하고 예민한 나를 더 깊게 들여 다 볼수록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깊어질수록 단단해지는 마음속 성을 이젠 깨트려 버리기로 했다.


불길한 혼자만의 세계를 벗어나 보자 싶었다. 내 마음이 만든 불안이라는 성이라면, 행복이라는 성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살며시 스며들었다.


사실 쉽지 않다. 와장창 깨트린 불안의 잔해들이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불안의 성들의 잔해가 남지 않게, 조금씩 녹여 버리기로 했다. 마치 내 마음속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살 녹여 존재를 없애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도와줄 듬직한 녀석을 찾아보았다. 자존감 이 녀석 어디 갔더라. 뜨거운 바닥에 캐러멜 시럽처럼 끈적끈적하게 늘러 붙은 자존감이라는 녀석은 오랫동안 존재를 감췄기에 불러도 대답이 없다. 자신의 이름조차 까먹은 듯하다.


조그맣고 예쁜 카페를 찾아보았다. 이곳은 늘 친절하다. 마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듯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 준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자존감이다. 돈이 없어도 자존감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흠뻑 받아보는 것이다. 세포 하나하나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곤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걷고 또 걸어본다.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곡을 선곡해 귀에 꽂아 본다. 그리곤 혼자 만의 세계에 들어가 이길 끝엔 행복의 통로가 있을 거라 상상해 본다.


생각이 나를 불안의 미래로 끌고 갔다면, 다른 생각이 나를 행복의 통로로 안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알고 있어도 귀찮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필요 없다는 생각.


선망의 대상이 내가 될 필요는 없다. 저 사람은 어쩜 저렇게 할 수 있는 게 많을까 싶지만 그들도 고난의 통로를 겪어 이제야 희망을 보았을 수도 있다. 나는 모르지만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그들도 마음은 불행한지 모르겠다.


그냥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하루하루 그냥 불안하지 않게 많은 애를 썼지만 애쓴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아 나의 존재가 의미 없는 삶은 이제 그만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거북이걸음으로 토끼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이 세상의 토끼들은 부지런하다. 거북이도 부지런하지만 이미 가진 것도 많고 날쌘 토끼는 더 부지런하다. 이제 그만 쉬라고 속삭여주고 싶지만 토끼는 신난다며 튼튼하고 기다란 다리로 거북이의 한 달치 걸음을 폴짝 뛰어다닌다. 나는 부지런히 한 달을 쉬지 않고 걸어야 그만큼인데 일초도 안되어 나의 한 달치를 앞서 버렸다. 이러니 내가 걷고 싶지가 않지.


귀도 어찌나 큰지, 거북이가 이렇다고 알려주는 말들은 작년에 들었던 말이라고 했다. 지난번에 이미 들었던 말이라고 했다. 어쩌다 착한 토끼를 만나 그들이 미리 나에게 먼발치의 소리들을 알려주지만 무슨 소리 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알아도 거기까지 가야 닿을 수 있는 말들이다. 답답한 마음에 거북이 등딱지를 내려놓고 숨겨 두었던 기다란 다리를 한껏 뽐내며 토끼처럼 폴짝 뛰어 본다. "아얏!" 병원에 갔더니 전치 8주란다.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지난번 토끼를 흉내 냈던 거북이는 세상을 떴다고 했다.


이래저래 토끼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 토끼를 구슬려 토끼의 등에 올라타 볼까 싶기도 하고, 토끼에게 나와 함께 해야 행복한 것처럼 즐거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어 토끼의 삶에 발하나 올려볼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거북이의 다리를 최대한 늘려 토끼의 발목 스냅을 배워볼까. 등에 짊어진 등딱지를 주머니에 넣어 보는 방법을 찾아볼까 싶다. 어쩌면 토끼만큼 빠른 바이크를 하나 구입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계획은 저만치 멀어진 토끼를 따라잡는 삶이 었는지 모르겠다. 토끼를 따라잡다가 제명에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헐떡이는 숨을 부여잡고 나 이만 큼 왔다고 이야기하면, 토끼는 목숨 걸고 걸어온 내 길을 일초만에 뛰어  한 달치의 내 가치를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릴 것 같다.


그러니 나는 토끼가 될 필요가 없다. 이젠 토끼가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면 한마디 해줘야겠다.


"싫은데?"


"난 그냥 천천히 걸을래. 천천히 예쁜 풍경도 보고 즐기면서 오늘은 이만치만 갈래. 내일 볼것들은 남겨 둬야지."


현실에 맞지 않게 나의 계획은 언제나 거대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만과 희망을 언제나 거대한 꿈에 걸었다. 거대하니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았고 버거웠다. 세워두었던 계획에 닿을 수 없어서 오늘도 의미 없는 삶이었다고 느꼈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내 삶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너에게 한 달치 양이지만 나는 일 년 치 양인 것을 인정해야겠다. 그리곤 천천히 의미 있는 내 삶이 더 행복하다고 느껴야겠다.


토끼에겐 느리지만 나에겐 너에게 비할 수 없는 대단한 열정과 꿈이 가득 있다는 것을. 더딘 내 삶은 무너지지 않은 대단한 마음까지 쌓아 올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그렇다는 것에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당당히 다가올 행복을 맞이 해야겠다. 좀 느리겠지만 언젠간 올 것이고 반드시 나에게도 행복이 올 것이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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