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시행된 가운데 다시금 화두가 되고있는 것이 서점의 근본적인 위기다. 골목 어귀마다 자리잡고 있던 동네서점들이 과거의 잔상이 된데 이어, PC방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던 도서 대여점 역시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올해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0년대 중반 5700여개에 다다르던 전국 서점수는 2013년 말 2,331개로 줄어들었다. 이 수치는 전년대비 246개(10%)가 줄어든 숫자다. 더불어 멀티샵 개념이 아닌 순수한 서점 수는 1,625개로 조사되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동네서점의 활성화를 기대하는 이도 있으나 이는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닐것이다. 수도권 지역 외 서점들에 어느정도 자생력이 생겼을 뿐이란 관측이다.
문제는 산업의 하락세가 아니라 책 자체를 읽지 않는 현상이다. 읽을만한 책이 없다기 보다 가볍게 읽고 필요하면 구매까지 이어지는 문화의 부재가 낳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영국의 경우 지난 10년간 서점의 1/3이 사라졌다는 통계가 있다.
세계가 서점문화의 부재를 걱정하고 있는 것에 비해 대만에서 서점은 국민들에게 매우 친숙한 공간이다. 대만인들에게 있어 서점은 책을 읽고, 구매하는 공간이자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해외에서 보기에 대만에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거대 서점이 전국에 다수 포진되어 있다. 특히 대만 수도 타이페이의 둔화난루(敦化南路)에 있는 청핀서점(청핀슈띠엔, 誠品書店)은 대표적인 서점이라 할 수 있다.
청핀서점은 전세계 어느 대형서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규모를 자랑하는 동시에 깨끗하며 세련된 문화공간이다. 마치 잘 지어진 도서관과 같은 외양을 보여준다. 더불어 서점 내부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바닥에 앉아 열심히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서점의 색다른 점이라면 청핀서점 본점의 경우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서점 초창기에는 폐점시간이 있었지만, 타이페이 시민들의 강한 요청으로 시간의 제한을 두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연중무휴 오픈된 공간이기에 지저분할 법도 하지만, 청핀서점은 인테리어나 시설들이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고, 쾌적한 실내 환경,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한 바닥, 잘 정리정돈 되어 있는 도서 등 서점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춘 곳이기도 하다.
청핀서점은 책을 구매하는 공간이지만,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다. 그렇기에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자주 활용된다. 연인을 기다리면서 책을 보고, 서점이 위치한 건물에서 쇼핑과 식사를 하는 것이 데이트의 공식처럼 되어있다. 24시간 열려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종일 보고 싶은 책들 읽을 수 있으며, 심야시간에 마땅히 거할 장소가 아쉬운 이들에게는 편안한 안식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말의 경우 낮시간대 손님보다 밤시간대 손님이 더 많은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사업적 측면에서 보자면 청핀슈띠엔 본점은 한마디로 매출과 관련된 마케팅을 전혀 안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페이 시민들에게 문화와 지식을 나눠주는 공간으로, 대만 서점의 랜드마크로 인식되어 있다. 이는 브랜드가 되어 청핀서점을 세계에 알리는 단초가 되었다. 어찌보면 가장 똑똑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청핀서점은 지난 1989년에 문을 연 뒤 25년간 42개의 체인점을 보유한 서점재벌로 성장했으며, 지난해 매출은 4억2500만 달러(약 4715억원)에 이른다. 더불어 2014년 수익은 이보다 8%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청핀서점과 같은 규모의 서점은 전세계 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청핀서점과 여타 국가 대형서점의 차이는 문화의 유무다. 우리는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