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사이 태풍같은 비바람이 제주의 이곳 저곳을 뒤흔들어 놓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을 보며 어쩌면 벌써 봄이 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며칠 엉덩이를 들썩거렸던 내 자신의 경솔함을 반성한다.
15년전 봄.
자고 가는 사람은 드물다며 정말 자고 갈거냐는 민박집 어르신의 물음에 나는 몹시도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짐을 풀었다. 예약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6인실을 척 하고 내어준 민박 사장님은 혼자 지내는 손님이 걱정 되었는지 이부자리도 봐주시고 떡도 나눠주셨다. 깊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르신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산책을 하기 위해 나선 길가는 그야말로 블랙아웃.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공포에 한기를 느끼며 되돌아와야했으니까. 그 흔한 가로등 하나 없는 작은 섬 안에서 그저 파도만이 기척을 낼 뿐이었다.
바람과 모래, 바다와 유채꽃이 전부였던 돌아누운 소를 닮은 그 섬은 이제 자동차와 사람으로 가득 차 밤에도 대낮 같고 매연이 넘치며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섬이 되었다지.
그러므로 이제 나는 봄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그 섬에서 <아무도 없는> 해변을 <혼자 걷는 일> 같은 잔잔한 여행을 다시는 꿈꿀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나는 그 섬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