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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e May 09. 2018

나야? 나무야?

목수의 꿈

나무 만지는 일을 하고 싶어.


사실 그가 한참전에 한옥 학교에 지원을 했고 제주 여행 당시 입학 허가 통보를 받았다는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제주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지 채 몇달이 되지 않아 그는 강원도 화천에 있는 한옥학교에 입학을 했다. 커피 일도 좋지만 기회가 된다면 나무 만지는 일도 해보고 싶다는 그를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6개월의 장거리 연애쯤이야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매주 나를 만나러 서울로 왔고 주말을 함께 보내고는 느즈막히 강원도로 돌아갔으니 그렇게 애닳도록 그립지 않았던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그는 그 해 강원도에 폭설이 자주 내렸는데 교통통제를 뚫고 어떻게 운전해서 온건지 신기할 정도로 열정적이기도 했다. 그렇게 6개월 가량 강원도와 서울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이어갈쯤 그가 내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 나 실습 나가기로 했어. 다음주부터 바로 시작이라 이번주에 짐 가지고 내려가야돼.

나 : 응? 뭐라고? 어딜? 어디로? 무슨 실습?


머리속에서 질문이 꼬여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그 : 전라도에 가서 한옥을 짓는 일이야. 실습이라기 보다 취업이지. 근데 화천은 주말마다 올 수 있었는데 아마 전라도에 가면 서울 오기 힘들어질거야. 한달에 한번이나 올라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 : 근데 그 이야기를 왜 이제서 해? 그래서 전라도로 간다고?


나원참. 기가 차서. 나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통보를 한 셈이다. 그래 가라 가!!!

서운함과 당혹감으로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는 그와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도 못한채 또 다시 생이별을 했다. 그는 목수로서 전라도에서 한옥을 짓는 일을 도왔고 일을 마친 저녁후에는 잠들기 전까지 영상통화로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상을 이어갔다.

전라도로 내려간지 얼마나 됐을까. 어렵게 주말에 올라온 그는 손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여기저기 찍혀 피가 맺혀있거나 멍이 들어 성한 곳이 없었다. 얼마전 함께 일하시던 분이 톱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도 있었다는데 그 사고의 당사자가 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을 말릴 생각은 없었지만 이 남자에게도 그런일이 벌어질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우리는 이미 연애 초반에 꽤 깊은 사이가 되었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수 있을정도로 가까워졌기에 나의 걱정이 더 커졌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있지. 나는 당신이 돈을 적게 벌어도 좋고 평생 백수여도 좋아. 다만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다치면 내가 견딜수 없을것 같아. 이 세상에 안전한 일은 하나도 없을수도 있지만 내 눈으로 이렇게 당신 상처를 직접적으로 확인하는건 너무 괴로운 일이야. 앞으로 당신이 평생 목수일을 한다고 하면 어쩔수 없지만 그런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그만둬. 나를 위해서.

유치하게도 나야? 나무야? 물은게 되었지만 그 당시 내가 그를 다치지 않게 지킬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고맙게도 그는 얼마뒤 전라도에서 올라왔고 사실은 정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나무가 좋아 나무 만지는 일을 배우고 취업도 나갔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고. 제대로 된 한옥을 짓고 싶었는데 온갖 술수와 잘못된 관행에 찌든 목수들의 모습에 실망만 잔뜩 하던 차였다고 한다. 우리는 다행이라며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나무 만지는 일을 배웠기 때문인지 천성이 손재주가 남다른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왠만한 공구는 다룰줄 알고 간단한 목공은 척척 해 내는 그는 정말 재주꾼 같다. 그러나 옛 어르신들 말씀에 재주가 많으면 일생이 피곤하다고 했던가. 남에게 맡기면 될 일 까지 떠안아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일이 한 둘이 아니지만 직접 하는게 마음이 편하다고 하니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을 생각이다.

말린다고 말려지지 않는 당신이라는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다치지 않기만을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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