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삶
차가운 수술대에 누웠다. 여기는 몇도나 되려나.
턱이 덜덜 떨리는 낮은 온도, 나를 내려다 보는 커다란 조명, 의사와 간호사의 기계적인 대화.
긴장한채로 누워있으니 호흡기를 끼워준다.
"그냥 산소에요. 편하게 숨쉬면 되요"
아 그런가. 아직 아닌건가. 하며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 약품 냄새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거짓말. 전신마취가 시작되는 신호였다.
세시간반 쯤 지나 눈을 떴을때 내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수술부위의 통증보다도 추위로 인한 괴로움이 더 컸던 탓에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추워요 너무 추워요. 추워서 죽을거 같아요.”
추위에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몇번이나 소리내었다.
간호사들은 두툼한 담요를 덮어주고 커다란 훈풍기를 내몸 구석구석에 쏘아댔지만 세시간 반 동안 낮은 온도에서 얼었던 몸은 쉽게 녹지 않았다.
추위를 이기려 턱에 너무 힘을 준 탓에 아직도 턱이 얼얼하다.
"000 보호자분!"
집도의는 엄마와 남편을 불러 수술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것 같았다.
"이제 입원실로 옮길께요"
다인실이던 회복실은 비좁았고 추웠다.
안정감 없는 침대의 까슬한 이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술부위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간호사는 환자를 두시간 가량 재우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웠다. 엄마와 남편이 내가 잠들지 못하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나는 자꾸만 잠이 왔다.
애써 눈을 떠보려해도 자꾸만 눈이 감겼다.
열고 보니 얼마전 자신이 내린 진단과 좀 더 나쁜 상황에 의사는 멋쩍은 얼굴로 초음파 할때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것 같다며, 그래도 수술은 잘 되었다며 걱정 마시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수술 부위도 그만큼 커졌다. 그러니 출혈도 통증도 일반적인 상황보다 몇배는 더 심했겠지. 케찹통을 닮은 피주머니에는 피가 쉴새없이 차올랐다.
‘소변줄은 대체 어디에 어떻게 꼽은거야.
궁금해 죽겠는데 누워있으니 볼수가 없네’
내 상태를 체크하고 피주머니의 피를 빼러 온 간호사에게 나는 반쯤 감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와. 이거 꼭 케찹 같네요.” 했다.
간호사는 당황한 얼굴로 아...그래요? 한다.
걱정가득한 표정으로 엄마와 남편이 내려다 보고 있기에 내딴엔 눙을 친건데 아 이런. 이 분위기 실패.
세시간 반을 종종거리며 수술실 앞에서 대기했을 엄마를 앞에 두고 아프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나 괜찮아 엄마. 참을만해. 얼른가. 막차 놓치겠다.
오빠. 걱정말고 가서 저녁먹어. 나 괜찮아”
실은 전혀 안괜찮았다. 너무 아팠고 너무 추웠고 너무 괴로웠다. 손등의 혈관에는 주사기를 넣기 무섭게 자꾸만 터져 멍이 들었고 양 팔에는 링거와 주사자국이 가득했다. 내 의지대로 소변을 보는것도 아니고 반송장처럼 누워 내몸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다니. 절망적이었다.
안괜찮아. 전혀 안괜찮아.
수술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며칠간의 지루한 입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을 한 뒤 친정집에 머물렀지만 도무지 몸과 마음이 편치가 않아 의사에게 비행기를 타고 되는지에 대한 허락을 구하고 무리해서 제주에 돌아왔다. 이사짐만 겨우 날라 놓은 집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짐정리도 나중에 하자.
사람하나 다닐 정도로만 길목을 열어놓고 이사 짐은 방 한 구석으로 몰아두었다.
그래. 당분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게을러지자.
한달이 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회복을 해야 하기에 겨우 노트북 자판이나 두둘기고 있지만 사람답게 건강하게 사는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예전엔 미쳐 몰랐지. 오랜시간 마음을 다친탓에 몸까지 말썽.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건강을 지키는 일 만큼은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하지만 과연.
덕분에 카페 오픈은 당분간 보류.
때문에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더욱 막막해졌고 빚 또한 눈덩이 같아 숨이 잘 안쉬어지는것 같은건 내 기분탓일까. 건강이 우선이라고 끄적이고 있지만 실은 건강보다 통장잔고가 더 걱정되는것은 어쩔수 없다고 중얼거리고 있는 현실이 애석할뿐. 그래도 일단 살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