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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리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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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e Oct 27. 2018

고독하고 조용한게 좋아요


수년전 제주 여행자 시절.
홀로 올레길을 걷다가 너무 지쳐 일부러 찾아간 카페가 있었다. 조용히 커피 한잔을 하고 싶었던 내 옆자리에는 귀를 찢는듯한 박장대소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앞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올려놓은 사람, 큰 소리로 영상통화하는 사람,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잡기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며 자신들의 사진 배경으로 쓰기 위해 카페의 이런저런 인테리어 소품을 마구 헤집어 놓는 커플이 있었다. 손을 닦기 위해 들어간 화장실은 손도 닦기 싫을 정도로 관리가 안되어 있었고 소음에 가까운 음악은 어찌나 큰지 귀가 멍 해질 정도였다. 그제 다녀온 오일장과 다를게 무엇인가 싶어 한참동안 카페 주인의 조치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관심도 두지 않고 자신의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단체가 들어오면 몇명이든 상관없이 여기저기 흩어진 의자를 이리저리 붙여주고 혼자 온 손님은 가장 좁은 구석 자리로 밀어냈다.

음료가 나온지 얼마 안되었지만 나는 그냥 나와버렸다. 가지고 나온 커피는 무슨 맛인지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갈증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삼켜며 이렇게 정신없고 관리도 안되는 카페의 커피가 맛이 있을리가 없지. 했던것 같다.


그 이후 몇년뒤 우연인지 필연인지 커피일을 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게 되었다.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른채 한 해 두 해 영업을 이어갔고 어떤 손님이 와서 무엇을 하든 그들의 면면을 일일이 신경쓰지 않았다. 행여 아이가 뛰어다니고 신발 양말을 벗은채로 박장대소를 하는 손님이 있었어도 말이다.
남편 성향 자체가 워낙 무던한 사람이었고 서울에서도 다양한 사람이 들고 나는 곳에서 카페를 운영했던 사람이다보니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이전에는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던 터라, 아. 카페는 다 이렇구나, 하며 모른척 넘겼다. 그래도 내가 손님의 입장이고 선택 할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조용한 곳, 그리고 세심하게 공간을 돌보는 주인이 있는 카페를 갈 것 같다는 생각은 버릴수가 없었다. 그런 곳에 대한 갈증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가끔 킥보드를 타고 오셔서 혼자 에스프레소를 드시던 손님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분 옆에 자신의 재산자랑 땅자랑을 늘어놓으며 쩌렁쩌렁 대화하는 분들이 앉았다. 경쟁하듯 큰소리로 재력을 과시하시는 통에 카페 안의 모든 손님들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그들의 집안사정, 재산사정을 알게 될 정도였다.  
그러자 그 킥보드 손님이,
아우 더럽게 시끄럽네. 하면서 나가버리셨다.
그 순간 정적이 흘렀고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눈물이 날 것 만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바로 내가 했어야 할 말이었다.
여행자 시절, 그야말로 그 더럽게 시끄러운 카페에서 주인이 무언가 조치해주지 않아서 내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는데 나는 왜 정작 이런 상황이 되었는데도 모른척 하고 있었던걸까. 저분도 나처럼 참다참다 자리를 박차고 나갔겠지. 싶은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죄송하다는 사과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그 이후로 그 손님은 다시 오지 않으셨다.

그 날 이후로 많은것이 바뀌었다.
조용하고 까다롭게 운영 방식을 바꾸면서 그야말로 욕도 많이 먹었고 몇몇의 손님들은 등을 돌렸다.

어쩌면 우리는 매출과는 정 반대로 가는 길을 택했는지 모르겠다. 돈을 벌고자 하면 어떤 손님이 오건 분위기가 어떻든 간에 신경쓰지 않고 사람만 많이 와라, 하면서 매상을 올리면 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주에는 수많은 카페가 있고 또 생기고 있지만 단 한명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널찍한 자리에서 원하는만큼 쉬다 갈수 있는 공간, 눈치 보지 않고 차 한잔 여유롭게 즐길수 있는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게 우리 카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자 시절 내가 원하고 바랬던것처럼 말이다. 실은 나는 그 킥보드 손님 사건 이후로 진작부터 그렇게 운영하지 못한것을 많이 후회했다.

가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내 고집대로 까다롭게 운영하는 것이 과연 옳은일인가. 하고 말이다. 마감을 하고 매출을 확인하면 현실적인 걱정이 앞서는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손님, 우리와 결이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꾸준히 와준다면 결국엔 우리가 오랜시간 이 자리에 서 있을수 있는 힘이 될거라고. 한분 한분 우리 편이 되 줄거라고. 그렇게 되뇌이며 오늘도 고독하고 조용한 카페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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