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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은 Mar 28. 2019

[브런치 무비패스 리뷰] 우상(2019)

우상(Idol)때문에 우상(Foolish)이 되어버린.

역시 배우의 파워는 대단하다.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라는 이름만으로 영화에 끌리게 하니 말이다. 심지어 감독의 전작이 <한공주>라니.. 봐야지 싶었다. 그래서 봤다. 스토리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는 채 본 영화는 음... 스릴러로써 나름 스릴 넘치고 긴박했지만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에 내 기준에는 너무 불친절한 영화였다. 그래서 반 정도의 아쉬움과 반쯤의 실망이 남는 영화다.



우상 : 1. 존경하고 숭배하는 대상(Idol)


사실 듣자마자 아 영화가 이러이러한 내용이겠구나 싶은 제목의 영화는 아니었다. 우상이라.. 영어 제목이 'Idol' 이니까 뭔가 숭배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그런 존재가 대한 이야기인가 보다 정도의 추측? 이 다 였던 것 같다. 그래도 아이돌이라니 좀 밝은 영화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예고편과 포스터를 보면 또 밝은 분위기는 전혀 아닌 것이.. 이 영화는 대체 뭘까 싶었다.


영화의 시작은 나의 그 진부한 추측과 맥을 같이하는 듯 보인다. 누가 봐도 존경할만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우상(Idol)인 도의원 '구명회(한석규)'가 등장하면서 시작되니 말이다. 그러나 이후 등장하게 된 사건은 한석규를 '우상'의 이미지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 처음에는 아들의 실수로 시작된 사건이 점점 많은 고의와 계획에 의해서 구명회는 점점 바닥으로 추락할 뿐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우상이 된 특정 사람이 이야기를 그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이 영화 제목인 '우상'은 뭘 의미할까?



나는 이 영화가 영화를 이끄는 세 메인 캐릭터의 각각의 '우상'을 향한 집념, 그리고 그 발악이 교차하며 생겨버린 악연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명회는 도지사를, '유중식(설경구)'은 하나뿐인 아들을, '최련화(천우희)'는 한국(생존)을 자신의 우상으로 가지고 있다.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우상을 쫓고 있었는데 하나의 사건으로 마주하게 되며 꼬여 버린다. 바로 구명회의 아들이 유중식의 아들이자 최련화의 남편을 죽게 만든 교통사고, 그 사건 때문에 말이다. 


사건 이후 세 사람의 움직임은 뭘 하건 악연 그 자체였다. 더 이상 좋아질 것이 없는 관계와 상황 속에서 세 사람끝은 결국 파멸이었다. 사실상 우상을 위해 갖은 발악을 하던 세 사람 모두 결국 그 갈망하던 욕망을 얻지는 못한 셈이다. 아. 한 명은 예외일 수 있겠다. 구명회는 비록 원하던 모습은 아닐지언정 그 엉망진창 속에서도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우상(Idol)'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때문에 구명회가 이 영화의 시작이자 맺음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가장 우상 같았던 사람이,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우상이 되었으니.




우상 : 2. 어리석은 형상(愚相, Foolish)


사건으로 서로가 악연이 되기 이전까지는 각자의 방법으로 우상을 쫓았다면, 사건 이후 세 사람의 우상을 향한 집념은 어쩐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모두 다 본능적으로, 그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참혹함도 무시하며 그저 우상을 쫓을 뿐이다. 그 안에는 도덕도 양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를 위해 련화를 제거하려 한 구명회나, 아들 때문에 련화를 거짓말로까지 잡아두는 중식, 자신이 살겠다고 자신을 해친 모두를 없애려는 련화까지 모두 자신의 우상 외에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그걸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전전긍긍할 뿐이다.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이 너무 처참하고 어리 석어 보였다. 대체 그 '우상(Idol)'뭐길래 이렇게 '우상(愚相)'이 된 걸까. 안타깝기도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드디어 이 제목이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우상(Idol)'쫓다 이 '우상(愚相)'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는 그리고 있으니. 그래서 우상이었나 보다.




 모른척하기 힘들었던 불친절함들


사실 영화를 처음 보고 느꼈던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내 기준에서 스토리가 극의 흐름만 따라서 이해하기에는 좀 불친절하게 구성이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건 하나하나가 바로 이해된다기보다는 곱씹다가 아 저래서 저랬나?라고 생각한 순간이 꽤나 빈번했다. 나는 일개 대중이기 때문에 영화가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우면 장벽이 높아져서 좀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를 더 물음표로 만든 것은 등장인물들의 발음과 대사였다. 자막이 없으니 대사 소리로부터 정보를 100% 의존해야 하는데 정확히 들은 대사는 50%가 채 될까 말까 싶다. 연변 출신으로 나오는 련화의 경우 너무 지나치게 사투리여서 못 알아듣는 경우가 너무 많았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중식 역의 설경구 역시 발음이 많이 뭉개져서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더 버거웠던 것 같다.



나에겐 꽤나 불친절한 영화였다. 배우에 어필당해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그러다 굳이 이렇게까지 곱씹어야 하나 싶은 영화였다. 제목에서부터 유추하기 힘들던 내용은 사실 지금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배우로 어필할 만큼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대사가 너무 안 들려서 크리티컬 했다. 호흡이나 긴박감은 스릴러로 꽤나 괜찮은 편이지만 영화가 내 기준 상당히 불친절한 부분이 더러 있기 때문에 보실 분들은 이 점을 유념하셨으면 좋겠다.


나의 별점 : 3.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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