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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은 Apr 04. 2019

[브런치 무비패스 리뷰] 바이스(2019)

전무후무한 '부통령'이 쏘아 올린 공들을 파헤치다

바이스(Vice). 처음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에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어려운 단어는 아닌데 본적은 거의 없는. 이 고작 네 글자의 단어가 뭘 의미하는 거지 싶었다. 그래서 찾아본 영화의 시놉에서 주인공이 '부통령(Vice President)'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아.. 부통령이 주인공이라 '바이스'구나 싶었다. 아마 우리나라에는 부통령이 없는지라 더 생소했나 보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미국에서도 그렇게 눈에 띄는 포지션은 아닌 '부통령'을 주제로 한 영화라니. 참신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빅 쇼트> 감독에 크리스찬 베일이면 이건 봐야 했다. 보고 난 후의 소감은 뭐랄까.. 재미있지만 씁쓸하고 더럽지만 우아한 느낌을 주는 묘한 영화였다.



전례에 없던 '부통령'의 등장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생소했던 점은 역시나 주인공이 '부통령'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아예 없는 지위이고 미국에서야 실제로 존재는 한다지만 그다지 존재감은 미비한 위치라는 게 보편적인 이미지여서 그런 것 같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령이 임기 중 갑자기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 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강력하게 주인공이 '부통령'임을 드러낸다. 정확히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를 말이다.


보통 이렇게 인물의 서사가 영화의 중심인 경우에는 그 사람의 이름이 제목에 딱! 하고 박히기 마련인데 이 영화의 제목은 그냥 단순하게 'Vice'이다. 미국의 역사에서 부통령이 '딕 체니'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심플한 제목의 의미를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존재감이 희미한 그 포지션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이 있었던' 부통령이기 때문에. 두 번째,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그 수많은 권모술수와 정치 행태 사이에서 이름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던 '부통령'이기 때문에.



사실 '딕 체니'를 제외한 부통령들의 경우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고 정말 물 흐르듯 흘러간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니 그 있는 듯 없는 듯한 권력자 중에서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면서 존재감을 부각한 건 '딕 체니' 뿐이니 그야말로 부통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온갖 비리와 만행들은 그가 부통령이라는 이유로 그의 행적으로 기록되기보다는 당시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부시 대통력의 행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의 만행이 대통령의 파급력만큼이나 널리 알려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나 또한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라크 전쟁의 원인을 부시 대통령에게 찾으려고 했으니까.


그래서 딕 체니의 전기적 영화에 'Vice'라는 제목이 얼마나 괜찮은 제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권력을 부릴 대로 부렸지만 'Vice'라는 이름 앞에 모든 걸 감출 수 있었던 그야말로 '부통령'에 가장 싱크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정치에 빼놓을 수 없는 해학


사실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그리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어마어마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권선징악도 없고 그냥 딕 체니가 못된 짓도 좀 하면서 평생 잘 먹고 잘 산다. 심장이식도 척척 받고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재밌었다고 느꼈던 이유는 부분 부분 아주 크게 있던 코믹 요소와 신박한 연출 덕분인 것 같다.


우선 누군가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연출이 너무 참신했다. 그래서 반쯤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가 또 연극을 보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나레이션이 딱딱한 나레이션이 아니라 감정이 실려 있어서 같이 욕하면서 보는 것 같았다. 실제 정치 욕할 때도 맞장구도 쳐줘야 더 재밌지 않나. 딱 그런 느낌이었다. 와 되게 나쁘다라고 생각이 들 때마다 나레이션으로 같이 욕해줘서 뭔가 사이다였다. 


그리고 딕 체니의 내면의 감정보다는 사건 위주로 서술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딕 체니가 그렇게 착한 사람으로 나오지는 않아서 그의 감정으로 영화가 그려졌다면 감정몰입 안돼서 고생했을 것 같은데, 그냥 사건 중심으로 영화가 그려지니까 욕하기 편하고 상황도 더 잘 이해되었달까. 괜히 그의 심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지였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에 찬사를


사실 배우들의 연기야 너무 믿보 배우들이라 말 안 해도 다들 아리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다시 언급하고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 크리스찬 베일은 진짜 처음 봤을 때는 얘가 누구라고? 싶었다. 그러다 배우 이름이 나와서 얘가 걔라고? 가 되었달까. 아카데미 분장상은 괜히 받은 게 아닌 것 같다. 담백하게 현실에 있을 것만 같은 나쁜 사람을 연기하는 것도 너무 잘해서 진짜 연기신 별명이 아깝지 않았다. 에이미 아담스도 두말하면 입 아프다. 연기도 분장도 너무 짱짱이었다. 단순히 권력자인 남편을 서포트하는 역할이 아닌,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약간 킹 메이커의 느낌이어서 특히 더 만족스러웠다.





아주 깔끔한 블랙 코미디 정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영화의 제목 '바이스'와 소재 '부통령'에서 오는 참신함이 컸고 영화는 그걸 만족시켜줄 만큼 나쁘지 않았다. 권력의 속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과 특정 인물의 서사를 중심으로 영화가 그려지고 있지만 감정 중심이 아닌 사건 중심으로 영화를 푼다는 점이 나는 특히 좋았다. 미국 정치에 대해서 잘 몰라도 매끄럽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그러면서 한편으로 씁쓸함도 느낄 수 있는 꽤 괜찮은 정치 영화였다.


나의 별점 : 3.5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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