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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은 Jun 11. 2019

[브런치 무비패스 리뷰]하나레이 베이(2019)

아들을 잃은 그곳에서, 비로소 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다.

처음 영화의 포스터와 제목만을 접했을 때에는 어떤 내용일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청량한 바다의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터와 제목으로 쓰인 바다의 이름, 하지만 포스터의 그 화창함 속에 어딘가 모르게 신경이 쓰이는 홀로 선 여자. 대비되는 그 모습이 매력적인 포스터에 끌려 영화를 봤다. 그렇게 본 영화는 포스터만큼 싱그럽고 아름다운,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다소 담담하면서 어둡기도 한 그런 영화였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바다를 마주하며 그녀가 받아들인 것들


영화의 주인공인 '사치(요시다 요)'는 하나뿐인 아들 '타카시(사노 레오)'를 하나레이 베이에서 사고로 잃었다. 하지만 죽은 아들을 수습하는 그녀의 모습은 자식을 잃은 부모라기에는 지나치게 담담하고 고요하다. 그렇게 아들의 죽음을 정리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려던 그녀는 돌연 하와이에 며칠을 더 머물게 되고, 이후 1년에 한 번, 아들이 죽은 그 맘때 하나레이 베이를 찾는다.


그녀가 하나레이 베이에서 하는 것은 별거 없다. 매년 똑같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바다로 유명한 하와이라지만 그녀는 장장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다에 들어가기는커녕 해변가에조차 가지 않는다. 그저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서 책을 읽는 것이 그녀의 하나레이 베이에서의 생활의 전부다. 그러다 영화의 말미쯤, '외다리 서퍼' 얘기를 듣고 그녀는 바다로 향한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온 해변과 바다를 헤매며 비로소 아들의 죽음과 '진짜로' 마주한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녀에게 바다란 무엇이었을까? 매년 찾아오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한 그 바다는 '아들이 목숨을 잃은 곳'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들의 마지막이 담긴 곳, 그래서 아들 그 자체로 느껴지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녀가 바다를 대하는 태도가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닮았다고 느꼈다. 그녀는 10년 동안 하나레이 베이와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다. 마치 그녀가 아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것처럼.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있지만 절대로 들어가지 않으며 그냥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들이 죽었지만 마치 바다가 아들을 대신하듯 그녀는 아무런 말도 감정표현도 없이 그렇게 묵묵히 바다를 곁에 두지만,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아들인 것만 같은 외다리 서퍼를 찾아 헤매며 그녀는 해변가에 발을 딛고 끝내 바다로 향한다. 그렇게 10년 만에 바다를 마주하게 되면서, 비로소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오랜 시간 거리를 두고 지내느라 미처 다 이해하지 못했던 아들, 그 자체를 받아들인 것 일수도 있겠다. 그렇게 아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둘 사이의 거리를 없앤 후에야 그녀는 아들의 죽음도, 그에 따라오는 슬픔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10년 만에 다시 정리를 시작해나간다. 예전엔 덮어두고 거리를 둔 것 뿐이라면, 이제는 정말 차곡차곡, 정성 들여 정리를 할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싱그러움 속에 도드라진 그녀의 슬픔


영화의 내용이 죽음과 관련되면서 약간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반면, 영상은 거의 시작부터 끝까지 청량하고 화창하기 그지없다. 누가 최고의 여행지 아니랄까 봐 바다의 모습도, 풀숲의 모습도, 하다못해 거리까지 너무 여름 여름 하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없었다면, 여행지 힐링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게 영상이 싱그럽기 때문일까, 아들을 잃은 그녀의 슬픔이 그 밝음 속에서 더 도드라진다.


청량한 공간 속 죽음이라는 무거움을 담담히 다루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면서 종종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느낌들이 어우러지면서 약간 뭐지 싶기도 한데, 나는 이 이질감이 나쁘지는 않더라. 너무 아름다운 공간이기 때문에 그 어두움이 더 눈에 띄고, 담담하기 때문에 그녀의 슬픔이 더 아린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이 묘한 낯설음이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생소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눈이 시릴 만큼 청량한 바다에서의 죽음과 이별을 다루고 있는데, 이 주제와 공간의 대비가 영화의 스토리를 더욱 부각해준다. 나는 주인공 '사치'와 바다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영화를 봤던 터라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포스터도 마음에 들었고, 사치를 따라 담담한 영화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쭉 모노톤이라 보는 사람에 따라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떠먹여 주는 영화는 아니니 고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의 별점 : 3.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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