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법 큰 프로젝트를 끝내 감회가 새롭다. 이 정도 규모(1월에 기획을 시작해 5월에 최종 릴리즈)의 프로젝트를 경험한 것은 처음이어서 특히 더 여러 감정과 생각이 오가는 것 같다. 내 경험들 중 제법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은 이 프로젝트를 강하게 기억에 남기고 싶어서 여러 편의 글을 통해 깊이 있게 돌아보고, 그때 했던 생각과 행동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기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전체 플로우를 두 번이나 싹 다 갈아엎었던 점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A라는 기능을 확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 유저 플로우와 와이어프레임을 그릴 때는 현재 운영 중인 화면을 기준으로 최대한 틀어지지 않는 방향에서 기획을 짰다.
그렇게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기존 화면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기존 유저들의 낯섦과 반발감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 당시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로덕트에 대한 이해도가 100%가 아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볼륨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 기능은 우리 서비스의 핵심을 담당하는 기능이기도 해서, 처음 유저 플로우를 정리한 후 기획자-개발자 미팅을 통해 개발 구현이 어떻게 될지를 논의했다. 사실 나는 이때 어느 정도의 피드백을 받고 수정할 줄 알았지 이렇게 싹 다 갈아엎을 일이 2번이나 발생할 줄을 몰랐다. 결과를 모르던 그 때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획자-개발 미팅에 참여했고, 개발자분들을 통해 해당 기능이 영향을 끼치는 화면이 굉장히 많으며, 볼륨이 내가 정리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팅 결과, 나는 첫 번째로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을 다시 갈아엎게 되었다.
해당 기능이 영향을 끼치는 모든 부분을 확인하고, 정의 및 수정해야 할 화면 목록을 다시 작성하여 뚝딱뚝딱 두 번째 기획물을 만들었고 다시 미팅을 잡았다. 첫 번째 기획물에서 놓쳤던 부분을 두 번째 기획물에서 어떻게 반영했는지 설명하고 새롭게 추가된 부분에 대해서도 정리하여 공유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팅 결과는 Good이 아니었다. 물론 이전보다 기획이 꼼꼼해졌고, 놓친 부분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뭔가 꼬여있는 느낌?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 강했다. 마치 맞지 않는 틀에 퍼즐을 끼워 넣은 것처럼 모든 퍼즐조각이 다 들어가 있지만, 퍼즐 조각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미팅 결과는 다시 또 갈아엎기였다.
가장 중요한건 결국 유저 경험
두 번째로 갈아엎게 되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뭐가 문젤까 싶어 유저 플로우를 계속 다시 타보고, 같은 도메인의 타서비스를 보며 다른 회사는 비슷한 기능을 어떻게 전개하고 있나 살펴보기도 했다. 고민 끝에 그동안 내가 너무 기존 화면과 도메인(혹은 서비스의 특성)에 너무 매여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화면과 기존 플로우를 다 뒤로한 채 우리 서비스의 핵심 플로우를 다시 정리해 보고 다른 서비스 (ex. 커머스의 물건 구매, 지도 서비스의 정보 탐색 등)의 핵심 기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유저의 입장에서 정리해 봤다.
굳이 도메인의 특성에 집착하기보다는 A라는 기능을 유저가 경험하는 데 있어 가장 비슷한 기능이라면 다른 도메인이어도 대입해서 적용해보았다. 여러 도메인의 서비스 플로우를 디테일하게 분석하여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을 반영해 보면서 기존 플로우 다 무시한 채 새롭게 유저 플로우와 화면을 구상했다. 이후 진행한 세 번째 미팅에서 이렇게 새롭게 구상한 유저 플로우와 화면에 대한 팀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약간의 피드백을 남긴 채 미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기존에 러닝 중이던 화면과 유저플로우를 거의 90프로 가까이 바꾸는 쪽으로 기획을 구상한 터라 개발자들의 공수도 그만큼 커지고 프로젝트의 볼륨도 커졌지만, 핵심 기능을 손보는 프로젝트인 만큼 시간과 리소스를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어 사내 관계자분들과 일정과 관련하여 다시 소통했고, 긍정적 검토 끝에 마지막에 구상한 버전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기획을 두 번 갈아엎으면서 크게 느꼈던 점은 기존 화면과 도메인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라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기존 유저를 배려하기 위해 기존 화면을 유지하려 했지만, 오히려 전체적인 흐름에서 유저 경험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것 같다. 이로 인해 처음에 UX가 좋지 않은 유저플로우를 기획했던 부분에서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다. 결국 마지막에 유저경험이라는 본질에 좀 더 집중하면서 유저 플로우를 변경한 부분이 시간은 좀 걸렸지만, 내부 미팅 때에도 ux가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있었고, 릴리즈 이후에도 ux 개선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 개인적으로 너무 뿌듯하고 만족스러움이 높은 프로젝트가 된 것 같다.
다만 아직까지 고민인 점은 기획을 디벨롭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소요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핵심 기능이었기 때문에 빠른 릴리즈보다 세심한 기획이 더 우선시되어 기획에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프로젝트가 이런 조건일 수는 없기에 무작정 기획에 시간을 많이 쏟을 수 없다. 어느 정도의 중간 지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아직 주니어 PM인지라 경험의 미숙으로 이 기준을 잡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얼른 경험을 열심히 쌓으면서 기준도 좀 잘 잡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