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변호사의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고
언젠가 새벽 4시에 한강에 간 적이 있다. 20대 초반 대학에 다닐 때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러 간.. 것은 아니고, 밤새 놀다가 그저 한강을 보고 싶어서 친구들과 택시를 타고 무작정 향했다. 당시 고향이던 안양에 살고 있었으니 그리 가까운 거리도, 가난한 대학생이기에 택시비도 저렴한 비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벽은 길었고 청춘에 매료된 20대 초반 특유의 열정은 가득하니 뭔들 문제가 될까. 야간할증이든 뭐든 그저 한강에 도착해서 새로운 재미를 맛보면 만족이었다.
다 같이 검게 물든 한강을 바라보며 이상한 멋에 취해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의 "도토리 묵 같다"는 한 마디에 감성이 와장창 무너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왁자지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한강을 달리던 어떤 젊은 남성분이 눈에 띄었다. 러닝에 특화된 그의 TPO(time-place-occasion)는 완벽했고 꽤나 멋진 외모를 자랑했다. 우리는 입을 모아 "오~ 대단하다!"라는 말을 던졌고 그는 손으로 따봉을 표시하며 멀어졌다.
김유진 변호사의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으면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이 짧은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당시 나의 새벽 4시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돌이켜봐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친구들도 생업에 시달리며,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한다. 만나더라도 때가 되면 집으로 가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그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지낸다. 그렇기에 더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비록 엄청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점차 삶의 무게가 와닿고 중량이 늘어나는 시기인 듯하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기도 하다.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은 회사를 키워가고 있는데 심리적 압박이 적지 않다. 소규모 회사임에도 B2G 사업이다 보니 신경 쓸 일이 많다. 기획, 연구, 영업, 마케팅, 인사, 회계, 행정 등 어느 하나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다. 회사의 성장에 대한 압박과 불안감을 내려놓기도 어렵다. 당장 할 일이 없을 때도 밤늦도록 책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인지 아침잠이 늘었고, 출근도 늦게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의 밤은 길고 아침은 짧아져 가고 있다.
책을 통해 느낀 김유진 변호사는 좋은 의미로 악착같은 독종형 인간이다. 외국에서 수영선수를 할 때도, 로스쿨을 다니며 인턴을 할 때도, 변호사 시험에 도전할 때도 항상 자신과의 끈질긴 싸움을 통해 성취했다. 보통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일을 하다가도 딴짓을 많이 하고, 계획을 세웠다가도 즉흥적으로 뒤엎어버리는 나와는 조금 다른 성향을 지닌듯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어서 알람을 5개 이상 맞추고 잔 적도 많지만 길어야 일주일이면 다시 되돌아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비록 습관화에는 항상 실패했지만 '미라클 모닝'을 향한 마음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라는 책에 이끌려서 읽은 것 같다. 4시 30분이라니. 20대 초반의 내가 대단하다고 했던 한강의 러너와 마주친 그 시간이 아닌가. 종종 러닝을 하긴 하지만 새벽 4시 30분은 어림도 없었다. 책은 아주 빠르게 읽혔다.
완독을 하고 책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너도 참 멍청했다는 말을 했다. 정말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깨어있을 때 뭘 해야 할까 생각하는 것에만 매몰되어서 '수면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유진 변호사는 전날 저녁부터, 아니 기상하고부터 항상 수면 컨디션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삶을 이어감에도 항상 6~7시간의 수면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늦은 약속을 최대한 자제하고, 어쩔 수 없이 참여한다고 해도 수면 습관과 컨디션 관리를 위해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나의 하루를 곰곰이 생각하며 최적의 루틴을 생각해 봤다. 스스로 정해놓은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당장 바꾸기는 부담스럽다. 그리고 김유진 변호사처럼 10시에는 못 잔다. 평소에 워낙 늦게 자던 습관도 있고, 일과를 마치고도 이것저것 하다 보면 10시는 훌쩍 넘어버린다. 조금씩 바꿔가려고는 하지만 당장은 때려죽여도 4시 30분에는 못 일어난다. 그래서 실현 가능할만한 기상 시간으로 7시를 선택했다. 새벽 1시에 자도 6시간은 잘 수 있다는 판단이다. 늦어도 11시 전에는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밤 11시에 '나이트 모드'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집에 있는 모든 조명과 TV를 소등하는 시간이다. 만약 아직 정리할 일이 남아있다면 주황색 미등 정도만 켤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밤 12시를 '취침 모드'라 부르기로 했다. 이 시간에는 침대에 누워야 한다. 잠깐 휴대폰을 보는 건 괜찮지만 SNS, 웹소설, 웹툰, 게임 등 자칫하면 푹 빠져서 수면을 방해하는 앱은 실행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세웠다.
우선 3일 동안 계획대로 살아봤는데 너무 만족스럽다. 원래 밤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자유시간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잠들기 아쉬워서 방황하다가 너무 졸려서 잠들 때까지 늘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트, 취침 모드를 실행해야 할 시간을 정해두니까 그전에 다 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첫날에는 일찍 취침 모드에 들어갔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전날 늦잠을 잔 이유도 있고, 늦게 잠드는 습관도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니 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결국 30분을 더 자고 7시 30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루 종일 피곤했지만 밤이 찾아오면 다시 돌아올 취침 시간을 기다리며 버텼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새벽 1시가 안 돼서 잠이 들고, 7시에 깔끔하게 일어났다. 잠도 충분히 잤는데 평소보다 2~3시간이나 일찍 일어나니 아침이 너무 여유로웠다. 티포트를 꺼내 잘 안 마시던 차도 한 잔 마시고, 30분 정도 독서를 하기도 했다. 창 밖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늘이 3일 차인데 어제보다 더 좋다. 평생 습관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른 아침 일어나서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멍을 때리고 있어도, 독서를 해도, 때론 글을 쓰거나 산책을 나가도 좋을 것 같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많아서인지 부담 없는 아침시간을 보내는 게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지내다 보면 다른 취미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이 시간을 즐기는데 집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