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리더는 '성찰'이 이끈다.
(아래는 팀장의 입장에서 써내려 간 픽션입니다.)
완전히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연차가 쌓여가고, 후임이 하나 둘 생기면서 '나도 언젠가는 팀장 역할을 맡겠지',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될 줄이야.
직장생활을 시작한지는 몇 년이 지났다. 한 두 회사를 거치며 경력이 생겼다. 주니어도 시니어도 아닌 애매한 시점. 기업들은 오히려 이 모호한 시점을 좋아한다. 자기 몫을 능숙히 해내면서,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연차니까. 여하간 그런 이유로, 많은 회사에서 이직 제안이 들어왔고 그 중 가장 성장성 있어 보이는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미래의 유니콘은 아니더라도 빠르게 성장하는 로켓에 합류했으니,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팀원으로 좋은 성과를 내면 되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맥락을 잡아가고 있는데 웬걸,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밑으로 4명의 후임이 생겼다. 회사에서는 나더러 매니저 역할까지 맡아 달라고 한다.
"팀원으로 잘해왔으니 팀장도 잘할 수 있을거야" 생각해보지만, 어렵다. 조직에서는 빠르게 성과를 내길 원하는데, 주니어들에게 시킬 바에는 내가 하는 게 훨씬 빠를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하자니, 또 큰 그림을 볼 시간이 없다. 그러다보니, 팀원들 사이에서는 '사사건건 간섭하는 마이크로 매니저'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그동안 당신은 좋은 팀원이었기에 팀장이 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팀장과 팀원은 엄연히 역할이 다르다. 팀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혼자서 골머리 썩지 말고 아주 똑똑한 그 분(구느님)을 찾아뵙자.
구느님은 매니저의 역할을 계획을 수립하고(Planning), 업무를 구조화하고(Organizing), 일을 주도하고(leading), 조직을 제어하는(Controlling) 걸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까 팀장은 실무자가 아니라 실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전반적인 성과와 팀원들을 관리해 팀이 목표한 바를 달성하게끔 돕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팀장의 역할을 정의했다고 좋은 팀장이 되는 건 아니다. 모든 팀장들이 위에서 정의한 팀장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어떤 팀장은 '좋은 팀장'으로, 또 어떤 팀장은 '나쁜 팀장'으로 인식된다. 단번에 좋은 팀장으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팀원들이 생각하는 나쁜 팀장의 특성은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반추해보자. <탁월한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에서는 나쁜 팀장, 조금 순화해서 '아쉬운' 리더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책임을 전가한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모욕적 언사를 하고,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
감정적으로 업무를 진행한다.
개인 친분과 선호가 드러나는 업무 지시
위 5가지 특성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가? "저런 팀장은 진짜 나쁜 팀장이지, 나는 그렇지 않아" 라고 안심했는가? 그렇다면 다음의 사례를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조직구조 변화로 인해 급작스레 팀장이 됐다. 기존에 맡던 몇 가지 업무를 급하게 팀원들에게 전달했다. 나름의 인수인계도 진행했다. 물론 타임라인이 촉박해 인수인계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문제다. 전혀 특별할 거 없고, 각자가 해결해야만 한다. 그런데 새로 일을 맡게 된 팀원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 업무가 늦어지길래 몇 번을 독려했고, '오너쉽을 가지라'고 조언을 해줬다.
자고로 KPI는 높게 잡아야 한다. 추후 이직을 생각했을 때, 최소한 경력기술서에 한 줄 쓰려면 내가 '여기에서 뭘 했다'는 걸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높은 성과를 나는 더욱 많은 일들을 통제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다. 쥬니어들은 큰 그림을 보는 걸 어려워하니까, 내가 좀 더 신경써서 일을 많이 쥐어주고 오더를 내려줘야 한다. 이들을 독려해서,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하는 게 이번 회사에서의 내 목표다.
이렇게 열정적인 나를, 왜 팀원들이 안따르는지 이해가 안된다. 회사 차원에서 무기력한 팀원들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왜 도움을 안주는지 모르겠다.
상황은 계속해서 변한다. 어제는 A라는 일을 했지만, 오늘은 B라는 일을 해야 한다. 탑다운으로 찍어 내리는 수치를, 우리는 따라야 한다. "왜 그렇게 하냐, 맥락을 설명해달라"고 따지는 팀원한테는 따로 미팅을 잡아 쓴소리를 했다. 하나하나 태클을 걸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팀원에게는 업무평가를 좋게 줄 수 없다.
기분이 나쁠 때는 언성이 높아진다. 서로 불쾌할 수 있지만, 업무는 어디까지나 업무일 뿐이다. 사실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건 고도의 기술이다. 약간의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면,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A라는 팀원은 일을 잘한다. 내 머릿속이 복잡해서, 조금 추상적으로 말할 때도 A는 곧잘 알아듣고 일을 해온다. 그러다보니 타팀과 이야기 할 때도 자연스럽게 A에 대한 칭찬을 하게 된다. 반면 B라는 팀원은 내 생각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가, 좀 더 중요한 일은 A에게, 비교적 가벼운 일은 B에게 맡기게 된다.
위 사례는 어떤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내용들이 많지 않나? 실제로 많은 것들은 '경계'에 서있다.
나는 정당한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내면에는 개인의 이익을 더욱 추구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을 '수' 있다. 업무의 전후사정을 아는 나는,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팀원들은 그런 나를 보고 언행불일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공정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지만, 팀원들은 나를 감정적이고 친분에 따라 일하는 사람으로 느끼고 있을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나쁜 팀장과 좋은 팀장을 가르는 지점이 있다. 나쁜 팀장들은 스스로를 나쁜 팀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과할 정도로 분명한 확신을 갖고 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맞다는 확신, 남들보다 더 깊은 고민을 했기에 결정의 우위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 스스로를 팀장으로 견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확신이 이들을 나쁜 팀장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앞서 아쉬운 리더의 특징을 정의한 <탁월한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에서는 탁월한 리더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탁월한 리더는 환경을 보는 가정이 다르다.
주어진 어려움을 상수가 아닌 변수로 파악한다. "상황이 어려워서 하지 못한다가 아니라,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탁월한 리더는 구성원을 보는 가정이 다르다.
팀원을 '내가 가르쳐야 하는 존재'가 아닌, '목표를 함께 달성하는 파트너'로 생각한다. 정보가 제한된 상태에서 업무가 진행되는 과거와 달리, 최근의 많은 조직들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있다. 당신의 팀원은 당신 생각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
- 탁월한 리더는 성과-사람관리에 대한 가정이 다르다.
성과를 추구하는 것과 사람을 관리하는 것을 상충관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둘 중에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무엇 하나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위에 따르면, 탁월한 리더들은 한 가지 생각에 얽메이지 않고 사고를 확장한다. 환경을 '주어진 것'을 넘어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확장시키고, 팀원과의 관계를 '우월함'과 '열등함'이 아닌 '함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관계로 변화시킨다. 그렇게 성과와 사람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모두를 가져가는 '탁월한 리더십'을 갖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함을 뜻하는 VU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nd ambiguity)가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변할 수 있다. '맞다'와 '틀리다' 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열린 사고관을 갖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 한다. 탁월성을 추구하기 위해, 성찰하자.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탁월한 리더가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