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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곶사슴 Aug 03. 2023

그런 회사가 있었어요? 어딨는데요?

회사의 업에 대한 규정하기

혹시, 우리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짧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회사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것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경영진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더라도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말해줘도 몰라요


국내에 '법인' 기업은 700만 개가 넘어가며 그중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은 9000여 개가 된다고 합니다. 그 밑에 있을 수많은 중견, 중소기업들과 소상공인까지 회사로 분류하기 시작하면 세상에 회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집단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실감할 수 있어요.


아무리 대기업 채용 인원이 많다고 한들, 모두가 10대 기업에 다닐 수 없으며 절대다수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대기업으로 분류가 되지만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기업들도 부지기수, '어떤 회사 다니세요?'라는 질문에 기업 이름만으로 답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 되시겠습니다.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 중 '삼양그룹'은 역사와 규모가 제법 되는 굴지의 기업입니다. 그런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세간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에요. '삼양'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라면으로 유명한 삼양식품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 두 기업은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기업이랍니다.


그래서 삼양그룹의 신입사원 공채 지원 프로그램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을 체크해야 합니다.

'라면을 만드는 삼양식품과 무관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셨습니까?'



월급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회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자소서를 쓸 때나 소개팅을 할 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회사 안에서 우리 회사가 정확히 어떤 제품을 어떻게 팔고 있는지 모르는 직원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업무 분야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다른 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아가 회사 서비스 구조를 정확하게는 모르는 채로 자신의 맡은 일만 묵묵하게 수행하고 있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가끔은 마케터도, 심한 경우 회사 대표이사라는 분도 어디 미팅이나 인터뷰에 나가서 작금의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꽃밭의 대화를 나누다가 말도 안 되는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 바람에 담당 직원들이 고혈압과 심근경색에 시달리는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왜 이런 불쌍사가 발생할까요?


회사라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분업해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일의 규모가 커질수록,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데,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관심을 끊기도 쉽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내 연봉과 월급의 숫자,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해 몰입하는 만큼 회사의 다른 일들에는 무감각해지는 거죠.


적어도 마케터라면,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회사 구석구석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금 우리 회사가 어디서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수치적인 정보도 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마케터가 밥값을 하는 출발선입니다.




돈이 흐르는 방향 찾기


기업의 존재 이유는 돈을 흐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회사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다음의 전제조건이 성립해야 한답니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유지비보다 많다.            

              위의 상황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또는 위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신뢰를 얻어 투자를 받았다.            


만약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아마 월급은 밀리는데 실적도 계속 안 좋아지고 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위기도 점점 나빠지고 있겠죠.


마케터는 위에서 두 번째 이유 [쓰는 돈 보다 가지고 있는 돈이 더 많은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직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지비보다 높은 수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거나, 미래의 어떤 가치를 위해 예쁜 지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됩니다.


어떻게든 가지고 있는 돈과 나의 노동력을 더해 돈이 될 어떤 가치를 끌어오는 것이 마케터의 일입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시간과 자본은 늘 한정적이기 때문에 마케터는 바쁘고 정신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근을 합니다.


하지만 야근이 능사는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구조를 가지고 있거나, 방향은 맞되 방법이 틀렸거나, 욕심이 지나친 상황이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밑빠진 독에 물 붓는 모양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지칩니다. 돈도 노동력도 항상 효율을 찾아야 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자본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먼저 파악한 뒤에 움직입시다.


재무제표를 아시나요?

회사가 일정 기간 동안 돈을 얼마나 벌었으며, 가지고 있는 돈을 어디에 썼는지를 기록하는 표인데요. 상장사들은 이것들을 반드시 일반 공개해야 하지만 스타트업이나 작은 기업들은 굳이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 재무제표를 보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은데요.


큰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내가 볼 필요가 없어서', 작은 회사의 사람들은 '안 보여주거나 없어서' 재무제표와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보는 눈이 없다고 슬쩍 거짓말을 쳐 놓는 분식회계 같은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들여다본다고 해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만,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슬쩍 봐도 쉽게 이해가 되지만 잘 모르면 들여다보는 것도 무서워지기 마련입니다. 계속 마케터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면 재무제표를 보는 방법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알아두면 여러모로 편해진답니다. 재무제표와 관련된 책이나 글들이 세상에 많이 뿌려져 있으니 쉬워 보이는 것부터 차근차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마케터가 이 표에서 봐야 하는 부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디서 벌어서            

              어디서 쓰는가            


사실 표 자체가 이게 목적이긴 합니다만, 마케터는 다른 것보다 인풋과 아웃풋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 항목들을 살펴보다 보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더 돈이 되는 쪽을 푸시 해줘야 하는지 빠르게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대표의 법인 차 비용이나 영업팀의 골프 접대비가 회사의 광고 홍보 비용보다 높다는 것을 발견하면 도망갈 타이밍을 잡으면 됩니다. 저는 둘 다 본 적 있어요...



돈을 버는 미래를 상상하기


돈의 흐름을 대충 파악했다면 몸담고 있는 업계에 대한 분석도 해보면 좋겠죠. 지금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은 SWOT 분석입니다.


처음으로 SWOT 분석을 접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학교 교양수업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교복 입던 시절에 알게 됐던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가물가물한 이유는 보통 마케팅 서적의 첫 번째 장에서 SWOT 분석을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케터라면 누구나 이것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치 수학의 정석 1장, 집합 부분만 너덜너덜한 것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SWOT은 각 단어를 줄인 말입니다.


              Strength (강점)            

              Weakness (약점)            

              Opportunity (기회)            

              Threat (위협)            


각 요소의 내용들을 살펴볼까요?


강점은 그야말로 우리가 남들에 비해 특출난 점을 생각하는 영역입니다. 개발자 풀이 좋다거나, 제품 퀄리티가 좋다는 등 다양한 요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맨파워일 수도, 인프라 일수도 있겠지요. 아무것도 없다면 '열정'을 넣을 수 있겠군요!... 도망쳐


약점은 강점과 반대의 영역입니다. 맨파워일 수도, 인프라일 수도, 열정페이일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장표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도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문제들은 내부로부터 야기되기 때문에 내부 요소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쯤 되면 기회와 위협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외부에서 찾으면 그게 기회와 위협이 됩니다. 우리 개발팀이 AI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나름 지식이 있는데 AI가 요즘 흥하네요? 기회죠. 대기업에서 갑자기 우리랑 비슷한 것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네요? 위협입니다.


강점과 약점은 내부 요인, 기회와 위협은 외부 요인으로 묶어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학적으로 접근해 내부요인은 x축, 외부요인은 y 축에 나눠서 표시하고, 현재 제품의 상황을 나타내는 그래프로 표현하기도 한답니다. 다른 브랜드의 위치도 함께 찍어서 자신의 위치를 돋보이도록 하는데 많이 쓰입니다. (경쟁사를 일부러 폄하하기 위해 쓰일 때가 많겠죠)


이해를 돕기 위해 x축 y 축을 쓰지만, 사실 각자의 요소를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도 상관없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해 보는 것을 추천해요. 위협이라는 것은 내부에도 존재하고 외부에도 존재하며, 반대로 회사 밖에 있는 어떤 요소가 우리의 강점이나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뭐든 서로 섞이는 성질을 가지기 마련인데, 이게 처음 마케팅을 접할 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SWOT의 각 내용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어제의 약점이 오늘의 강점이 될 수도 있고, 어제까지는 분명 기회였었는데 오늘 아침에 터진 어떤 사건으로 기회가 사라져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지도를 그리면서 S W O T를 각각 새로 쓰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케터라면 굳이 그리지 않아도 각각의 내용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너무 정확할 필요는 없어요. 애초에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해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죠.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혼자만의 근거 없는 자신감일 수 있고요. 약점이나 위협에 해당하는 내용은 지나친 겸손함일 수도 있습니다. 뭐든 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니 흔들릴 필요 없어요.


그래서 현업 사람들은 회의를 할 때 SWOT 같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는 거예요. 척수반사 같은 거예요. 경영하는 사람이나 마케터끼리 뭔 정리를 하고 있어요. 대학생도 아니고.


그래서 마케터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사업 개요를 설명하는 장표를 만들거나 다른 업체에 기업을 소개하는 IR 자료를 만들 때 자주 사용되곤 합니다. 설득을 위해 '지금 시장 분위기상 우리의 위치는 여기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마케팅 캠페인을 짠다면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됩니다.

우리 위치는 여기에 있으니까 이제부터 어떤 것을 하겠노라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루틴 업무 - 반복적인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습니다. 콘텐츠 마케터라면 '오늘은 블로그에 글을 하나 올릴 겁니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게 어제와 같이 좋지 않은 지표를 내고 있거나 누구도 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일을 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회사는 계속 도태될 것이고 마케터의 성장은 멈추겠죠. 불안해서 글을 두 개 쓴다고 특별히 나아지는 것은 없을 거예요.


이렇게 고여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이제는 좀 달라져야겠다는 '촉'이 흔들릴 때, SWOT 분석은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잘 하고 있는 것은 더 잘 굴러가게 만들고, 못 하고 있거나 위협적인 것은 피하거나 타파할 전략을 세우고 움직이면 됩니다.


당연하게도, SWOT을 생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해결책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꽤 큰 성장을 이룰 수 있고,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는 영웅적 서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하면서 지표만 보고 있는다고 해서 성장할 수는 없어요. 흐름을 보면서 내가 바꿈으로 인해 달라지는 우리의 위치를 볼 때 더 분명하게 와닿는 것이 있을 겁니다.


항상 기억하세요. 회사의 일, 나의 일은 속도와 방향입니다.

나의 일과 커리어에 몰두해 보는 것도 좋지만 먼저 내가 몸담은 회사의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마케팅은 몇 번 망한 뒤에도 언제든 다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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