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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Mar 11. 2019

'그때 그들' &. '바이스'  

권력의 단맛, 그 함정에 빠진 악마들...

*’그때 그들’과 ‘바이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특히 ‘바이스’의 경우 정식 개봉전이므로 더욱 주의 바랍니다.



저는 정치를 모릅니다. 모르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운 좋게도 저 같은 소시민이 정치인들을 만난 적도 있는데요. 신기하면서도 저 사람들은 미소 뒤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모든 정치인들이 속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죠. 부페, 비리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실존 인물을 다룬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더구나 지금도 생존하는 인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여기 겁 없이 실존인물을 다룬 두 영화가 있습니다. 최고 권력의 다음인 넘버 2까지 해본 사람들, 하지만 넘버 1을 능가하는 무서운 권력자들입니다. 이탈리아 국무총리를 역임한 실비오 베를루코니의 이야기를 다룬 '그때 그들'(영문원제 Them/이탈리어 원제 Loro/2018)과 미국의 부통령을 역임한 딕 체니의 이야기를 다룬 '바이스'(원제 Vice/2018)입니다.









이탈리아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거느리는 세르조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정치계에 접근하여 출세를 하기로 말이죠.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인데요, 그는 이탈리아 정치인인 실비오에게 접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실비오의 별장에서 모델들을 데리고 보란 듯이 파티를 열고 실비오가 자신들의 모습을 봐주길 바랬던 것이죠. 한편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실비오는 남부러울 게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동산 사업가로 시작한 그는 방송국과 축구 구단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마치 구금당한 사람처럼 이 곳 대저택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복귀를 위해서 그들은 다른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시도하고 다시 복귀를 하지만 이탈리아의 대지진과 실비오의 과거 스캔들이 얽히면서 다시 위기에 직면합니다.








젊은 청년 리처드는 술에 절어있고 사고를 내는 그야말로 사고뭉치였습니다. 대학교도 중도 포기해야 할 정도였죠. 애인의 도움으로 대학교를 다시 다니고 미국 의회에 입성하게 되고 공화당의 도널드 럼즈펠드의 보좌관이 됩니다. 그리고 승승장구하여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합니다. 마지막 대선을 도전하려던 찰나 딸의 동성애 문제로 그의 정치 인생은 마감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부시 후보(아버지 조지 부시 말고 아들 부시)는 솔깃한 제안으로 딕 체니를 다시 정계에 불러들이게 됩니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된 상황에서 일부 결정 권한을 딕에게 맡기게 되지요. 그리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는 사건이 벌어지니 2011년 9월 11일 바로 그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사건 종료 후(?) 평화로움도 잠시... 딕 체니의 심장에 다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온 것이죠.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 편으로는 현재도 생존하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당연 '너 고소~!'를 외치며 법정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인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두 영화는 실화를 다루고 있으나 일부 장면은 우리도 실화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조크인 동시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모습을 보입니다. 실존 인물을 인터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줗은 면을 이야기하는 전기영화가 아니기에 그들의 흑역사를 이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죠. 결국 뉴스에 알려진, 문서화된 이야기로만 구성되어야 한다는 애로사항이 있지요.



(좌) 실비오 베를루코니, (우) 딕 체니 (출처: 연합뉴스)


‘그때 그들'은 초반 가상의 인물 세르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그의 이야기로 영화가 전개될 것과 달리 최종 보스인 실비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온갖 비리와 헐벗은 여성들의 춤사위, 마약으로 얼룩진 파티가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지진이 벌어지고 실비오의 본격적인 보여주기 쇼가 벌어집니다.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오프닝에서는 음소거된 TV 화면 속에 에어컨 바람에 쓰러진 양의 모습으로 보여주며 엔딩에서는 무너진 오래된 성당(으로 보이는)에서 잔해 속에 깔려있는 석상을 끌어올리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국민들은 현장에서, TV로 조마조마하게 그 장면을 봅니다. 그 사이로 이 영화의 제목인 'LORO'란 자막이 뜨며 구조요원들의 얼굴들이 클로즈업됩니다. 진짜 히어로는, 국민을 위한 파수꾼들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죠. 영화는 실비오 베를루코니를 비롯한 부페, 비리 정치인을 고발함과 동시에 흥청망청 환락의 파티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동시에 비판합니다.

'바이스'의 풍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망나니 같이 살았던 리처드(딕 체니의 본명, 리처드 부르스 체니)는 미의회로 진출하며 개과천선(?)하게 되죠. 그리고 딸을 아끼는 뜻에서 정치를 포기하게 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그는 석유 시추 회사 홀리버튼의 CEO였기에 손해 볼 게 없죠.) 그러면서 엔딩크레딧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나 싶지만 아직 러닝타임은 많이 나와 있는 상황이죠. 어쨌든 정치계로 재복귀한 그는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한 조지 W. 부시를 만나게 되며 킹메이커를 자처하게 됩니다. 소름 끼치는 장면을 말한다면 두 가지가 생각하는데 하나는 담화문을 방송하고 있는 상황에서 밑에서는 다리를 떨고 거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아들 부시의 모습 뒤로 폭격에 탁자 밑에 벌벌 떠는 이라크 국민의 모습을 이어서 보여주는 장면일 것입니다. 또 하나, 딕 체니는 심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미있는 장치를 집어넣는데 소시민이자 해설자가 죽음으로써 그의 심장을 이식받는 장면으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가짜 엔딩크레딧과 화면 전환을 위한 충격요법은 딕 체니의 속물근성을 이야기하고 있고 동시에 미국 국민과 이라크 국민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근데 감독을 알고 나면 왜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는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때 그들'의 감독은 '유스'와 '그레이트 뷰티'를 만든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으로 유난히 축제와 휴식 등의 상황이 많이 등장하는데 축제와 힐링을 말하는 상황 속에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의 고뇌를 이야기한 부분이 인상적이죠. '그때 그들'은 앞의 영화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오프닝과 엔딩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휴식과 힐링은 돈과 약물로 얼룩진 인위적인 축제가 아닌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어루만져주는 것이 진정한 힐링이자 아름다운 축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파울로 소렌티노의 페르소나인 토니 세르빌로가 실비오로 열연했습니다. OST는 클럽 음악부터 부드러운 클레식에 이르기까디 다양하며 ‘유스’에 출연과 더불어 OST에 참여했던 조수미 씨는 이 영화의 OST에서도 자신의 음악을 들려줍니다.





'바이스'의 아담 멕케이는 전작 '빅쇼트'를 통해 어려운 경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냈죠. 마고 로비가 실명으로 욕조에 누워 어려운 경제 용어를 쉽게 설명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가 예사로운 영화는 아니었던 것이죠. '바이스' 역시 같은 관점에서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전기영화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지난 영화와 괘를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 영화는 약 빤 편집과 자막과 더불어 분장쇼가 한 몫했다고 보이는데 딕 체니 역에 크리스찬 베일, 린 체니 역에 에이미 아담스, 럼스펠드 역에 스티븐 카렐, 아들 조지 부시 역에 샘 록웰이 열연해 100% 싱크로울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도 가지고 있죠. '그때 그들'의 러닝타임은 2시간 37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자랑하는데 파티 장면이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작품은 실제로는 1부와 2부로 나눠진 상태에서 157분이란 시간도 견디기 벅찬데 두 개로 나뉜 이야기가 흥미로운 상황들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역시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듭니다. '바이스'의 경우 지나치게 화면 전환이 많고 전기영화에서의 진지함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워낙 두 감독들의 전작들이 화려한 영상미를 자랑하던 감독들이라 이것이 양날의 검이 될 것이라는 점은 예상 가능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참으로 불만인 부분이 있죠.
정말 착한 사람, 많아 고생한 사람들은 일찍 단명하고 독재자들이나 범법자들은 불사조처럼 죽지 않는  것일까라는 의문이죠. 이들 두 영화의 등장인물은 죽지 않고 오히려 장수하고 있습니다. 욕먹으면 장수한다는 방식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것이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네... 오래 장수하십시오. 하지만 당신들의 죄는 사후 역사에 남아 후세에게 살벌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라도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심판을 받더라도 그 죄가 약간은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그게 어려운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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